‘볼링계의 대통령’으로 군림하면서 국가대표 선수 선정을 좌지우지하고, 선수 스카우트와 이적 과정에 개입해 돈을 뜯어낸 전 대한볼링협회 부회장이 재판에 넘겨졌다.
22일 검찰과 경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김후균)는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참가할 볼링 국가대표 선수를 뽑는 과정에서 순위 조작을 한 혐의(업무방해)로 강모(64) 전 부회장을 지난 19일 구속 기소했다. 대표 선발전에 참가한 8명의 선수 중 6명을 대표로 선정하게 돼 있었는데, 성적상 1, 3위를 차지했던 두 선수의 지도자평가점수를 일부러 0점으로 매기는 방식으로 하위 성적의 두 선수가 아시안게임에 참가할 수 있도록 조작한 혐의다.
전체 평가에서 지도자평가점수는 30%를 차지할 정도로, 대표 선발에 결정적인데 강씨는 “군대에 갔다 오지 않은 선수들이 나가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두 선수에게 양보를 강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강씨가 밀어준 두 선수는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 군 면제, 연금 혜택 등을 받았다.
강씨는 2011년 대학에 진학하려고 준비하던 국가대표 선수를 실업 팀으로 보내면서 ‘우수선수 유치 지원비’로 실업 팀이 선수에게 지급한 2,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당시 강씨는 실업 팀 감독에게 “스카우트비 얼마 나오냐, 나오면 (나한테) 가져와라”고 노골적으로 협박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실업 팀 감독 6명에게 “돈을 보내라. 안 그러면 전기 톱으로 다리를 잘라버린다”고 협박해 1,850만원을 뜯어낸 사실도 드러났다. 전국체전 참가를 위해 선수가 필요한 지방 실업 팀에 다른 지방 소속 국가대표 선수를 강제로 이적시키면서 뒷돈 1,000만원을 받아낸 혐의도 받고 있다. 무작위로 연락이 닿은 선수나 실업 팀 감독, 선수 부모 등 24명에게 상습적으로 “생활비를 빌려주면 바로 갚겠다”고 거짓말해 4년간 8,272만원을 가로챈 사기 혐의도 있다.
강씨는 갈취한 돈을 모두 마카오, 강원도 정선 등지에서 도박 자금으로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11월 마카오에서 도박을 하다, 1억원의 빚을 진 사실도 드러났다. 강씨에게 피해를 당한 선수와 부모, 실업 팀 감독들은 하나같이 “앞으로 활동하는데 불이익을 받을까 봐 거부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강씨는 1980년대 볼링 국가대표 선수를 지냈으며, 이후 청소년국가대표 코치, 국가대표 감독, 대한볼링협회 이사와 부회장 등 요직을 지내면서 ‘볼링계의 큰손’ 노릇을 해왔다. 검찰 관계자는 “볼링계의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커 피해자들도 강씨 요구를 쉽게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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