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29ㆍKB금융그룹)는 한 번 하기도 힘든 메이저대회 우승을 7번 차지한 것을 포함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18승을 쌓았다. LPGA 투어에서 최연소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에서도 4승을 보탰다. 지난해에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전 세계에 한 명 밖에 없는 '골든슬래머'가 됐다. 그러나 유독 국내무대와 인연이 없었다. 지난해까지 16번 출전해 준우승 5번을 포함해 11차례 톱10에 든 것이 말해주듯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그래서 박인비는 21일 강원 춘천 라데나 골프클럽(파72ㆍ6,277야드)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어느 때보다 의욕을 보였다. 순탄하게 결승까지 진출한 후에도 박인비는 “마음이 앞서면 안 되는 것이 골프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오면 잡고 지키는 골프를 하도록 하겠다. 조급함만 없앤다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기까지 했다. 하지만 박인비는 김자영(26ㆍAB&I)에게 또 무릎을 꿇고 ‘준우승 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준우승만 6번째다.
객관적인 전력이나 이름값이나 박인비의 우승이 예상된 결승전이었다. 김자영은 5년 동안 우승이 없었던 데다가 이날 오전 열린 준결승에서 김해림(28ㆍ롯데)을 연장전 끝에 힘겹게 물리쳤다. 반면 박인비는 이승현(26ㆍNH투자증권)을 두 홀 남기고 4홀차로 여유 있게 꺾고 결승에 올랐다.
그러나 결승전 초반부터 예상과 달리 전개됐다. 김자영이 경기 초반부터 250야드를 넘나드는 드라이버샷과 정교한 퍼팅으로 기선을 제압한 것. 김자영은 2번 홀(파5)에서 세 번째 샷이 그린을 살짝 벗어나 프린지로 갔다. 그러나 퍼트를 잡고 한 번에 홀에 집어넣으며 버디를 낚았다. 먼저 기세를 올린 김자영은 4번 홀(파4)에서 보기를 하며 동점을 허용했다. 하지만 7번 홀(파3)에서 7m가량 되는 옆 라인의 까다로운 버디 퍼팅을 성공시키며 다시 앞서나갔다.
박인비도 한 홀차로 뒤지던 8번 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을 홀 바로 옆에 갖다 붙여 동률을 이루며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자 김자영은 9번 홀(파4)에서 박인비가 어프로치 실수로 보기를 하는 사이 다시 한 홀을 앞서기 시작했다. 이어 10번 홀(파4)에서 4m가량의 까다로운 버디 퍼팅을 홀 속에 집어넣으며 갤러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두 홀차가 나자 천하의 박인비도 흔들렸다. 12번 홀(파5) 티샷이 벙커에 빠진 것. 세번째 샷은 깃대를 맞고 홀에 바짝 붙는 버디로 이어졌지만 김자영은 두 번째 샷을 홀 옆 1m에 갖다 붙인 뒤 흔들림없이 퍼팅에 성공하며 이글을 기록, 3홀 차로 격차를 벌렸다. 이어 13번 홀(파3)부터 16번 홀(파3)까지 파로 잘 막아내며 티샷이 흔들린 박인비의 추격을 뿌리쳤다.
프로 8년 차인 김자영은 2012년 8월 SBS투어 히든밸리 여자오픈에서 마지막 정상에 오른 뒤 4년 9개월 만에 우승컵을 안았다. 김자영은 2012년에만 3승을 올린 이후 이번 우승으로 통산 4승을 차지했다. 5년 전에 이어 이 대회에서만 2승을 따냈다. 우승상금도 1억7,500만원을 거머쥐며 상금 랭킹 3위로 뛰어올랐다.
3,4위전에서는 김해림이 이승현을 3홀 차로 꺾고 3위를 차지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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