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축구다.’
90분 내내 아무리 경기를 지배했어도 마무리를 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축구는 득점을 해야 이기는 스포츠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패배 뒤 이 말을 곱씹었을 것 같다.
잉글랜드가 ‘죽음의 조’에서 먼저 웃었다.
잉글랜드는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A조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를 3-0으로 완파했다. 두 팀은 ‘전통의 축구 강호’로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 후보로 거론된다. 뚜껑을 열어보니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 둘 다 전력이 탄탄했다. 3골 차가 날 정도의 실력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상대의 세트피스와 역습에 당한 뒤 FIFA가 이번 대회에 의욕적으로 도입한 비디오판독(VAR)의 희생양이 되며 무너졌다.
경기 초반은 아르헨티나가 완벽하게 지배했다.
스페인 프로축구 그라나다에서 뛰는 최전방 공격수 에세키엘 폰세는 전반 14분과 24분 잇달아 위력적인 슈팅을 날렸다. 미드필더 산티아고 아스카시바르와 산티아고 골롬바토는 중원을 장악해 촘촘한 패스로 잉글랜드를 계속 위협했다. 프리킥과 코너킥 등 세트피스는 왼발 킥이 날카로운 콜롬바토가 전담했다. 잉글랜드는 전반 30분까지 하프라인을 거의 넘지도 못했다. 전반에 아르헨티나는 슈팅이 11개, 잉글랜드는 3개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가 좋은 기회를 골로 만들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잉글랜드는 프리킥 한 방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전반 39분 키어런 도월의 왼발 프리킥을 도미닉 칼버트-르윈이 다이빙 헤딩 슈팅으로 연결해 그물을 갈랐다. 둘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에버턴에서 함께 뛴다.
아르헨티나에 쩔쩔 매던 잉글랜드는 선제골을 넣은 뒤 기가 살아났다. 빠른 스피드와 롱 킥으로 아르헨티나 뒷공간을 노렸다. 후반 초반 아르헨티나는 역습에 또 한 번 허를 찔렸다. 잉글랜드는 후반 6분 골키퍼에서 길게 넘어온 볼을 받은 아담 제임스 암스트롱이 빠른 스피드로 파고든 뒤 문전 오른쪽에서 강력한 오른발 땅볼 슈팅으로 추가골을 뽑아냈다.
다급해진 아르헨티나는 아껴뒀던 에이스 라우타로 마르티네스를 투입하며 거세게 추격에 나섰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VAR로 또 악재를 맞았다.
후반 30분경 마르티네스와 몸싸움을 벌이던 잉글랜드 올루와 토모리가 측면에서 쓰러져 뒹굴었다. 주심은 그대로 경기를 진행했다가 잠시 뒤 갑자기 중단하고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주심은 경기장 밖에 있는 존으로 가서 직접 모니터를 본 뒤 다시 그라운드로 들어와 마르티네스를 퇴장시켰다. 마르티네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항의했지만 전광판 화면에 팔꿈치로 상대를 가격하는 모습이 생생히 잡혔다. VAR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전의를 상실한 아르헨티나는 후반 막판 페널티킥까지 허용했고 잉글랜드 도미닉 솔란케가 침착하게 성공했다.
아르헨티나와 2차전을 치러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 마르티네스가 퇴장으로 뛰지 못하는 건 호재다. 하지만 1패를 당한 아르헨티나가 한국을 상대로 사력을 다할 것이 분명한 건 부담이다.
전주=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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