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바리 근성 하나로 프로농구 코트에서 20년간 1,029경기를 뛴 ‘철인’ 주희정(40)이 눈물을 쏟으며 현역 생활을 마쳤다.
주희정은 18일 서울 논현동 한국농구연맹(KBL) 센터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 결정을 내린 순간부터 이 자리에 있는 순간까지 꿈을 꾸는 것 같다”며 “농구에 미쳐 살아온 나에게 지금 기분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고려대를 중퇴하고 1997년 원주 동부의 전신, 원주 나래 블루버드에 연습생 신분으로 입단한 주희정은 1997~98시즌 KBL 신인왕 수상을 시작으로 총 20시즌 동안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1,000경기 이상을 뛰며 최다 어시스트(5,381개), 최다 스틸(1,505개), 국내 선수 최다 트리플더블(8회) 등 화려한 이정표를 남겼다. 특히 20시즌을 뛰며 빠진 경기는 15차례에 불과할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 주희정은 이 가운데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1,000 경기를 이뤘던 것이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주희정은 “아무 생각 없이 농구공을 갖고 놀았던 초등학교 시절, 강동희 선수를 보며 꿈 키웠던 중학교 시절, 하나뿐인 할머니를 호강시켜드리기 위해 죽도록 열심히 했던 고교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과 할머니 생각으로 성숙했던 대학 시절, 일찍 프로에 입문해서 뛴 20년”이라며 “스스로 채찍질하며 이 자리까지 왔고, 항상 최선을 다했으니까 후회는 없다”고 자신의 농구 인생을 돌이켜봤다.
사실 주희정은 현역으로 더 뛰고 싶은 마음이 컸다. 농구계도 이를 기정사실처럼 여겼다. 그러나 구단과 협의를 거쳐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자신의 의지보다도 구단의 생각이 반영된 결정에 아쉬움도 묻어났다. 주희정은 “우리도 NBA(미국프로농구)처럼 나이에 국한되지 않고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를 바란다”며 “선수 주희정은 막을 내리고 물러난다”고 말을 힘겹게 이어갔다.
그는 은퇴 발표 이후 달라진 생활을 언급하다가 눈물을 훔쳤다. 주희정은 “첫째, 둘째 아이가 정규리그를 마친 뒤 ‘1년만 더 선수 생활을 하면 안되겠냐’고 묻길래 ‘꼭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는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또한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서 자란 것을 떠올리며 울컥했다. 주희정은 “심각한 질병을 안고도 손자 하나 잘 키위기 위해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효도다운 효도를 못해 드려 평생 죽을 때까지 가슴이 아플 것 같다”며 “이제는 할머니 얼굴조차 머리 속으로 생각을 하면 떠오르지 않지만 매일매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도자로 제2의 농구 인생을 준비하는 주희정은 “몇 년 전 NBA 중계를 우연히 봤는데 스티브 내쉬가 피닉스에 있을 때 당시 마이크 댄토니 감독이 상대 팀 공격 횟수가 40번이면 피닉스는 70~80번 정도 하는 걸 봤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고, 내가 원하는 농구 스타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지도자로 돌아온다면 댄토니 감독의 전술을 한국에 맞게끔 배워와서 역동적이고 팬들이 즐거워하는 농구를 하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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