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만대 뿐이던 판매량
작년 30만대로 세계 2위 성장률
오토바이 판매는 매년 급감
내년 수입차 관세 철폐 놓고
국내외 완성차 업체 득실 엇갈려
진출 늦은 한국기업들 고전 중
베트남 사람들의 주력 교통수단으로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는 오토바이. 10여년 전부터 자전거를 밀어 내고 베트남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발’이 됐지만 그 자리도 머지않아 자동차에게 내줘야 할지 모른다. 베트남 자동차 시장, 특히 승용차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만 해도 한 해 10만대 정도에 불과했던 베트남 자동차 시장 규모는 3년 만인 지난해 30만대를 넘어섰다. 베트남 오토바이 시장 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일본 혼다는 오토바이 판매가 감소하자 방글라데시 등으로의 공장 이전이나 아예 시장 철수 카드까지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다시 자동차로 베트남의 주력 교통수단이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4일 호찌민시 부촌 중 한 곳인 푸미흥의 한 대로변에 자리 잡은 기아자동차 전시장. 어머니(45)와 함께 매장을 둘러보던 레 뚜이 두웬(24ㆍ여)씨는 “복잡한 시내 길 운전하기엔 이 자동차가 좋다”며 빨간색 모닝을 낙점했다. 매장 직원은 상위 모델 리오(국내명 프라이드)와 세라토(K3)를 추천했지만, 두웬씨는 “그랩이나 우버로 불러도 택시가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주목적”이라며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두웬씨는 또 비 올 때, 치마를 입을 때 오토바이를 타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밤길 여성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소매치기들에게 타깃이 된다는 점을 들어 젊은 여성 직장인들 사이에 보다 안전한 자동차 구매 바람이 불고 있다고 전했다.
전시된 모닝 가격은 3억2,500만동(약 1,618만원). 응우옌 코아 남 판매이사는 “기아차가 베트남 업체 타코 공장에서 조립생산을 해 비교적 저렴하다”며 “젊은층에게 인기 있는 모닝과 세라토(한국명 K3)를 중심으로 작년보다 20% 이상 늘어난 월 150~200대가량 판매한다”고 말했다. 인근의 마쓰다, BMW 매장 분위기도 비슷했다. 호 쩡 히우 BMW 베트남 푸미흥 판매부문 대표는 “3시리즈가 가장 인기 있고 7시리즈도 실적이 나쁘지 않지만 물량이 없어서 못 파는 실정”이라며 “지난달 기준으로 작년과 비교해 30% 가량 판매가 늘었다”고 귀띔했다.
이런 추세는 베트남 자동차생산자협회(VAMA) 통계 등에서도 확인된다. 코트라 호찌민무역관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에서 판매된 자동차는 30만4,427대로 전년 대비 24.3% 증가했다. 각각 42.8%, 55.2%의 증가율을 보인 2014년과 2015년에 비해 성장세는 약간 둔화했으나 승용차 판매 증가율이 상용차 증가율을 앞지른 점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지난 1년간 상용차 시장이 19% 성장한 사이, 승용차 시장은 27.1% 커졌다. 영국의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JATO는 최근 보고서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 높은 성장 속도”라고 분석했다.
승용차 시장의 빠른 성장은 오토바이 판매 급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1년 330만대로 정점을 찍었던 오토바이 판대 대수는 2015년 191만대로 거의 반토막 났고, 지난해에는 150만대를 간신히 넘겼다. 베트남 산업통상부(MOIT)의 통계 자료를 보면 베트남에는 4,500만대의 오토바이가 보급됐다. 2명 당 1대 꼴이다.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 오토바이 시장을 60%가량 차지하고 있는 혼다가 베트남에서 철수한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며 “자전거처럼 오토바이 시대도 곧 저물 것”이라고 내다봤다. 메르세데스벤츠 베트남의 응우옌 민 투안 마케팅담당은 “베트남은 인구 1,000명당 자동차 수가 30대밖에 되지 않는다. 비슷한 경제 규모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한참 낮은 수준”이라며 “베트남 자동차 시장의 성장 잠재력은 어느 나라보다 크다”고 설명했다. 아세안 회원국의 인구 1,000명당 자동차 보급대수는 지난해 기준 50대에 이른다. 태국은 이미 15년 전 이 수준에 올라섰다.
베트남 자동차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무엇보다도 동남아국가연합(ASEAN) 역내에서 관세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상품무역협정에 따라 자동차에 부과하는 수입관세는 2015년 50%에서 지난해 40%, 올해 30%로 인하됐다. 덕분에 역내 최대 자동차 생산국인 태국에서 수입된 자동차는 지난해 37% 증가한 3만4,336대를 기록했고, 역외인 한국과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감소했다. 베트남 당국은 지난해에만 자동차 판매 가격이 평균 6% 인하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베트남 토종 기업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남아 있는 관세(30%)가 내년부터는 완전히 철폐돼서다.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베트남 정부가 높은 관세 장벽을 쳐 놨지만 자국 기업들이 저조한 실적을 내는 사이 도요타 등 태국을 주요 생산기반으로 하는 수입 자동차들이 밀려 들어왔고, 베트남 업계는 고사(枯死) 상태에 내몰렸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시장점유율 40%로 베트남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현지 자동차 업체 타코(Thaco)는 기아, 마쓰다 등 해외 기업들과 합작을 통해 이들 자동차의 조립ㆍ생산 물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대응할 뿐, 경쟁력 있는 모델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내년부터 수입차 관세가 완전 철폐된다 하더라도 베트남 정부는 특별소비세 인상 등 비관세 장벽으로 국내 자동차 제조사 보호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현지의 한 자동차 딜러는 “기다렸다 관세 인하 후 구매하려는 고객도 많은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절반 정도는 관세 철폐에 맞춰 정부가 특소세를 올릴 것으로 보고 미리 계약을 했다”고 전했다.
관세 철폐로 위협받는 곳은 토종 업체만이 아니다. 아세안 역내에 자체생산 시설을 갖고 있지 않은 현대차 등 한국 기업들도 위기를 맞았다. 3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베트남을 찾는 등 현지 공장과 합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태국 등 역내에 생산시설을 갖춘 일본 업체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란 평가가 많다. 베트남에 진출한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도 베트남 공장 신설보다는 역내 수입 확대를 위해 골몰하고 있다. 현지 재계 관계자는 “중국 개방 때 일본과 동시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선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으나 오래 전부터 일본이 터를 닦은 아세안에서는 완전 딴판”이라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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