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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문 대통령의 퇴근길

입력
2017.05.1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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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헌정사에서 비록 며칠이나마 사저에서 집무실로 출근하고 다시 사저로 퇴근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게 될 것 같다. 3월 중순 전 대통령이 파면과 함께 청와대를 떠난 이후 줄곧 비어 있던 관저의 새 주인이 누가될지, 또 취향이 어떤지 몰라 취임일까지 시설을 개조하지 못한 탓이다. 부인 김정숙 여사가 도배 등 공사현장에 간식거리를 사 들고 가는 등 작업을 독려한 끝에 취임 후 3일 만인 지난 13일에야 대통령 부부가 청와대에 입주한 것도 탄핵과 조기대선이 아니었으면 결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 문 대통령의 출근길은 매번 아이돌 같은 화제를 몰고 다녔다. 사저 이웃주민들은 방탄차량을 타고 나서는 대통령에게 박수로 팬덤을 대신했고, 대통령은 수차례 차에서 내려 자신 때문에 불편을 겪은 주민들에게 미안함을 표시했다. 두 번 다시 없을 장면을 남기려는 셀카 요청에 흔쾌히 응하며 "잘 찍으시네요"라고 멋쩍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예정된 동선이 흐트러지자 경호팀은 내내 당황했고 수행팀은 다음 일정에 늦을까 봐 발을 굴렀다. 그런 대통령의 출근길 풍경은 김정숙 여사가 고마움을 담아 돌린 시루떡과 함께 추억으로 건너갔다.

▦ 문 대통령의 퇴근길은 어떨까. 그는 대선 유세과정에서 누차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약속하며 "퇴근길에 남대문시장이든 어디든 불쑥불쑥 들러 시민들과 소주잔이나 막걸리잔을 기울이면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듣겠다"고 말했고 취임사에서 이 약속을 거듭 확인했다. 우리도 북유럽 국가들처럼 시장에서 퇴근길 대통령을 마주치고 운이 좋으면 술잔도 주고받을 날이 머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집무실을 광화문 광장 근처로 옮기는 것은 내년 말이나 가능하고, 그때도 문 대통령의 인기가 지금과 같을지는 모르니 말이다.

▦ 문 대통령의 출퇴근이 새삼 눈길을 끄는 것은 직전 대통령의 권력 사유화가 출퇴근 개념부재에서 시작됐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10월 번역 출간된 '출퇴근의 역사'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인 출퇴근은 '아궁이와 사냥터'를 분리하려는 인간의 열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그런 만큼 문 대통령이 퇴근길마저 소통의 사냥터로 삼기로 마음먹었으면 대선 경쟁자였던 유승민 의원의 칼퇴근법과 심상정 의원의 슈퍼우먼방지법 등을 막걸리 안주로 삼았으면 좋겠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재 잡는 일이 별건가.

이유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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