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바퀴 사이의 거리인
축거를 대폭 늘려 공간 확장
편의사양ㆍ성능까지 좋아져
아반떼 출력, 그랜저TG 추월
회사원 김진철(55)씨는 최근 새로 구입할 신차를 알아보고 있다. 2008년에 구입한 중형세단이 주행거리가 15만km를 넘기면서 잔고장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자주 가는 정비소에서 외부벨트, 워터펌프 등을 교체해야 한다는 진단까지 받았다. 김씨는 탈만큼 탔다고 생각하고 영업소를 방문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0년 사이 차 크기가 너무나 커졌기 때문이다. 그가 타고 있는 차량은 실내공간을 결정짓는 앞뒤바퀴 간 거리인 축거가 2,700mm인데, 현재 같은 차종은 105mm가 길어진 2,805mm로 출시되고 있다. 이 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인 준중형이 축거가 2,700mm였다. 김씨는 “딸 아이도 직장에 다녀 가족 모두 차량에 탈 일이 많지 않은데다, 현재 크기도 충분해 굳이 중형차를 구입해야 할 지 고민이다”고 말했다.
완성차 업체들이 너도나도 신차를 내놓으며 덩치를 키우고 있다. 차량 등급 기준을 최상위로 맞춰 공간을 늘리고, 각종 편의사양도 추가하며 대형ㆍ고급화를 추진하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토요타자동차는 최근 하이브리드차량인 ‘프리우스 V’를 내놓으며 차체길이를 기존보다 165㎜ 늘렸고, 높이(95㎜), 축거(80㎜) 또한 키웠다. 실내공간과 트렁크 용량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레저활동이나 가족용차로 활용이 충분한 친환경차로 제작했다“는 설명이다.
덩치를 키워 본래 성격까지 바꾼 차량까지 등장했다. 지난달 출시한 BMW 미니(MINI) 신형모델(뉴 미니 컨트리맨)은 차명처럼 앙증맞은 디자인과 주행 감성에 초점을 맞춘 3도어차량이다. 그러나 2010년 처음으로 4도어 모델인 미니 컨트리맨 모델을 내놓은 후, 차체를 계속 키워 이번에는 기존 대비 길이를 200mm(축거 75mm)나 늘렸다. 1959년 출시된 1세대 미니(전장3,050㎜)와 비교하면 1m 이상 차량이 커진 셈이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열풍을 반영해 가족 단위 고객까지 흡수하기 위해 과감한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이들 차량뿐만 아니라 상당수 차량의 덩치는 커지는 추세다. 예컨대 국민차로 불리는 현대차 아반떼는 현재 전장이 4,570mm, 축거는 2,700mm로 출시되고 있다. 2008년형 쏘나타 트랜스폼 모델보다 길이는 230mm 짧지만 축거(2,730mm)가 비슷해지면서 내부 공간이 10년 전 쏘나타와 맞먹는 수준이 된 것이다. 아반떼 첫 모델이었던 1995년식은 축거 2,550mm(전장 4,450mm)에 불과했다. 한국지엠이 지난 1월 내놓은 경쟁모델인 크루즈는 길이(4,665mm)를 아반떼 보다 늘려 상품성을 높였다고 홍보할 만큼 차량 덩치는 중요한 평가 잣대가 됐다.
중형차 시장에서 대표 차량인 쏘나타 역시 3월 신모델 뉴라이즈를 전장 4,855mm에, 축거 2,805mm로 제작했다. 10년 전 쏘나타 대비 축거가 75mm, 1996년식인 쏘나타3 보다는 105mm 각각 길어져, 그 만큼 내부공간이 늘어난 셈이다.
5개월 연속 매달 1만대이상 판매하고 있는 신형 그랜저인 IG모델은 전장 4,930mm, 축거 2,845mm인 반면 2006년에 출시한 TG모델은 4,895mm, 2,780mm에 불과하다. 쏘나타 뉴라이즈가 10년 전 그랜저와 비슷한 덩치를 갖게 된 것이다.
경차시장의 지존 한국지엠 스파크는 현재 전장을 3,595mm(축거 2,385mm)로 내놓고 있다. 전신인 마티즈 98년 첫 모델과 비교하면 100mm(축거45mm) 길어졌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가족과 레저활동이 늘어나면서 승용차 크기도 커지는 추세”라며 “내부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차량길이는 경차 기준인 3.6m를 최대한 맞추면서도 축거를 늘리기 위한 설계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덩치가 커진 만큼 편의사양, 성능도 좋아졌다. 예컨대 엔진의 경우 신형 아반테는 1,600cc인데도, 최대출력은 204마력을 구현해 그랜저 TG(2,700ccㆍ192마력) 쏘나타 트랜스폼(2,000ccㆍ163마력)을 능가한다.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엔진이 다운사이징된 덕분이다. 순간적인 힘을 나타내는 최대토크에서도 아반떼는 27.0kg.m로, 10년 전 쏘나타(20.1kg.m)ㆍ그랜저(25.5kg.m)보다 높다. 국내에서 경형ㆍ소형ㆍ중형ㆍ대형 등 4개로 구분 짓는 차량 등급의 최상위 기준으로 덩치는 맞추면서 보다 내실을 다지고 있는 것이다. 아반떼, 크루즈 등이 등급은 소형(1,600cc미만, 길이 4,700mm이하 등)이지만 중형에 못지 않다는 의미로 준중형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틈새를 파고 든 모델도 등장했다. 포드의 토러스 2.0 모델은 차 길이는 5,155mm로, 대형세단 제네시스 G80(4,9990mm)보다 큰데도, 배기량이 2,000cc이하여서 중형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젠 이 기준도 조만간 바뀔 전망이다. 정부가 등급구분 기준을 차량의 바닥면적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서다. 내연기관 차량의 대형ㆍ고급화뿐만 아니라 전기차ㆍ초소형차 등의 등장으로 차종분류 체계 손질이 불가피해 진 것이다. 배기량이 아닌 탄소배출량으로 차종을 나누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내 최적의 차종 분류 시안을 만들 계획이다. 이럴 경우 아반떼 등 소형은 중형인 소나타급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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