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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 고민해봅시다] 베이비박스 선악 다툼보다 미혼모 지원체계 구축이 우선

입력
2017.05.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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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락 목사가 지난 2일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아이를 기르는 미혼모 등에게 지원하는 분유와 기저귀 등 물품을 가리키고 있다. 배우한기자bwh3140@hankookilb.com
이종락 목사가 지난 2일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아이를 기르는 미혼모 등에게 지원하는 분유와 기저귀 등 물품을 가리키고 있다. 배우한기자bwh3140@hankookilb.com

베이비박스 문제를 풀기 위해선 단순한 선악 논쟁의 외피를 벗겨내는 것이 첫 단계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소라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베이비박스 자체의 선악을 말하긴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는 “선진국의 경우 이미 공적인 미혼모 지원 체계 등을 충분히 갖춘 뒤, 그러고도 남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베이비박스를 둘지 말지 고민한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공적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마치 베이비박스만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언론 등에 의해 호도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영아 유기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낮은 수준이자, 사적인 방식인 베이비박스가 미담 사례로 부각되며 영아 유기의 주된 원인인 미혼모 차별 해소 방안 등은 정작 뒷전으로 밀렸다는 것이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 역시 베이비박스가 최종 해결책이 아니라는 데는 동의한다. 이 목사는 “처음에는 아이들의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전국 각 도에 하나씩 베이비박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아이를 친부모에게 돌려보내거나 입양 활성화를 통해 영아 유기를 줄여나가 장기적으로는 베이비박스를 없애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원가정 보호(친부모의 아이 양육)를 위해서는 영아 유기의 유혹에 가장 빠지기 쉬운 청소년 미혼모 등을 위한 특화된 지원 대책이 급선무로 꼽힌다. 미혼모는 혼자 영아를 길러야 하는 경우가 많아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곤란한데, 특히 청소년은 모아둔 돈도 없고 취업도 어려워 경제적 어려움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김형범 미혼모지원네트워크 기획팀장은 “월 70만~80만원 가량의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만으로는 월세 등을 내고 나면 아이 분유값 등도 감당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그러다 아르바이트라도 뛰게 되면 소득이 인정돼 생계급여 수급자 자격을 잃게 되는 되는데, 영아를 키우는 기간 동안만이라도 수급 자격 특례를 인정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형숙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미혼모나 예비 미혼모들에게 실질적인 멘토 역할을 해줄 수 있는 24시간 콜센터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베이비박스 논란은 조만간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법제처는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헤이그협약)의 국회 비준안 마련을 위한 막바지 절차에 들어갔다. 정부는 이달 중 국회에 비준안을 넘길 계획이다. 해외 입양 감축과 원가정 보호 의무를 강조하는 헤이그협약은 전 세계 94개국이 가입해 있으며 한국은 진영 전 복지부 장관이 2013년 서명해 비준 절차만을 남겨두고 있다. 협약에 가입하면 앞으로 아이를 입양을 시키려는 친부모는 지자체와 반드시 상담을 거쳐야 하는 등 입양특례법이 지금보다 한층 강화될 예정이다. 원가정 보호를 결심한 미혼모 등의 지원 근거도 마련된다. 이렇게 되면 입양과 베이비박스 이용이 동시에 줄어들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나온다.

반면 이종락 목사 등은 미혼모 등이 출생신고에 부담을 느껴 아이를 버리는 일을 막기 위해 지역구 국회의원 등과 함께 관련 법안을 오는 8월쯤 발의할 예정이다. 법안엔 부모가 출생신고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아이를 버리는 일을 막기 위해 부모 이름을 넣지 않고도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는 ‘익명 출산제’ ‘비밀 출산제’등의 법적 근거가 담길 예정인데,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아동 인권과 관련한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의 외관. 배우한기자bwh3140@hankookilb.com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의 외관. 배우한기자bwh3140@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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