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면서도 선뜻 표를 주기로 결심을 못하는 이들이 주변에 꽤 있었다. ‘문재인’이라는 인간, 혹은 정치인에 대해서는 호감을 가지면서도 그의 주위를 두텁게 에워싸고 있는 세력들에 대한 걱정과 불신이 이유였다. 보수정권 10년 간 칼을 갈아 온 그들에게 한 자리씩을 다 챙겨주려고 한다면 새 정부에서도 인사는 결국 나눠먹기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들이 비선실세나 문고리권력이 될 거라는 우려도 덧칠해졌다. 그 중심에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동고동락했던 ‘3철’(양정철, 전해철, 이호철)이 있다.
문 대통령 당선 바로 다음 날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미국으로 출국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공항에서 지인들에게 남겼다는 글은 깊은 울림이 있었다. “3철로 불리는 우리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문 후보(대통령)가 힘들고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 곁에서 묵묵히 도왔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은 3철을 공격했고, 일부 언론은 이를 증폭시켰습니다. 이런 비난과 오해가 옳다거나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괜찮습니다.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떠나는 이유를 적었다. 그는 “정권교체는 이루어졌고 제가 할 일을 다한 듯하다”며 “저는 권력이나 명예보다 자유롭기를 원해왔고, 저의 자유를 위해 먼 길을 떠난다”고 했다.
글을 읽으며 뜨끔했다. ‘3철’을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면서, 범죄자 취급까지는 아니지만 주변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예단을 한 건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치적으로 의도된 것일 수도 있는 이런 프레임으로 인한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그를 얼마나 심적으로 고통스럽게 했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정권 창출에 아무런 공을 세우지 않았으면서도 주변을 기웃거리다 뒤늦게 한 발을 걸쳐 어떻게든 자리 하나를 따내려는 이들이 무수히 널려있는 게 현실이다. 임무만 마치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언을 하고서도 “한 번만 더”를 외치며 추잡한 권력욕을 보이는 이들도 숱하다. 하물며 온 몸을 불살랐을 그가 모든 걸 내려놓는 결정을 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다.
속속 이뤄지고 있는 새 정부 인사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후한 점수를 줄만하다. 탕평책의 상징으로 ‘비문’이자 호남 출신인 이낙연 전 전남도지사를 총리 후보로 내세운 것, 비서실장에 ‘젊은 피’인 임종석씨를 앉힌 것, 민정수석에 비 법조인 출신의 조국 교수를 임명해 검찰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 모두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정권 실세가 맡아온 총무비서관 자리에 누구나 예상해왔던 ‘3철’의 대표주자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아니라 공무원 사회 ‘7급 신화’를 써내려 오던 이정도 전 기획재정부 국장을 임명한 것도 신선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직접 인선 배경을 설명한 건 박근혜 정부의 ‘불통인사’ ‘깜깜이인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혀졌다.
하지만 이제 5년 중 겨우 5일이 지났을 뿐이다. 청와대 인선이 마무리되면 내각, 공공기관장 인사가 줄을 이을 것이고, 금융기관을 비롯해 민간기업, 그리고 각종 협회의 수장이나 감사 자리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릴 것이다. ‘한 자리’를 향해 목 매고 있는 수 많은 공신들의 ‘청구서’를 끝까지 외면할 수 있을지 솔직히 여전히 회의적이다.
“빈손으로 취임하고 빈손으로 퇴임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취임사는 매우 반갑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 본인이 빈손이더라도 5년 동안 측근들이 너도나도 선물 한 꾸러미씩 안고 간다면 박근혜 정부와 다를 건 없다. 따지고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도 본인 스스로는 빈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문재인 정부의 권력은 측근이 아니라 촛불을 든 국민들이 안겨준 것임을, 그러니 자리 나눠먹기는 그 촛불을 사유화하는 것임을 한 순간도 잊지 않길 바란다.
이영태 정책사회부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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