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지난 2월 말레이시아에서 살해되기 전 미국 정보기관과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한국계 미국인과 접촉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은 김정남의 이런 마지막 행보가 살해된 동기의 하나였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김정남이 자신을 죄어오는 북한 당국에 쫓기다 미국에 고급정보를 건네며 망명을 시도했던 게 아니냐는 개연성이 거론된다.
아사히(朝日)신문은 13일 현지 수사관계자와 김정남의 지인을 인용해 이같이 전하며 거래를 통한 망명시도가 드러나 결국 김정남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정황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정남은 지난 2월 6일 오후 가족과 살던 마카오를 떠나 혼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했다.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김정남이 검은 가방 하나를 들고 말레이시아를 찾았다. 이어 8일에는 주변에 행선지를 알리지 않은 채 말레이시아 북부 휴양지 랑카위 군도로 이동했고, 다음날 호텔에서 문제의 한 남자와 합류했다. 쿠알라룸푸르 공항 청사에서 암살되기 5일 전이다.
김정남과 합류한 이 남자는 태국 방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중년의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현지 수사관계자들이 밝히고 있다. 이 인물은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이 미국 정보기관과 연계된 것으로 보고 입국할 때마다 감시해온 인물이다. 그의 말레이시아 입국 시점도 김정남과 같은 2월 6일이었다.
김정남은 이 남자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같은 달 9일에도 오후 1시께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가 약 2시간 뒤에야 나왔다. 수사당국은 같은 날 김정남이 갖고 있던 노트북에 USB가 꽂혔던 것으로 파악했다. 이는 김정남의 노트북 사용 기록 분석 결과로 확인한 것으로, 말레이시아 당국은 김정남이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이 남자에게 전해준 것으로 보고 자료분석을 계속하는 중이다.
김정남은 사망하기 하루 전인 12일 밤 휴양지 랑카위를 떠나 쿠알라룸푸르로 돌아왔고, 다음날 오전 공항에서 출국수속을 하다가 얼굴에 독 공격을 받았다. 문제의 남자도 같은 날 말레이시아를 출국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북한의 비밀경찰 등이 김정남의 이런 행동과 여행 일정을 당시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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