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수백명 눈매 등 기억해
형사들 전철역 등서 무작정 주시
“수배자 얼굴 맞닥뜨리면 전율”
아날로그 수사방식 재조명
번화가나 전철역 앞에 무작정 서서 기억력과 두 눈만으로 지명수배자를 찾아내는 일본 경찰의 독특한 수사방식이 있다. 이른바 ‘미아타리(불시 발견) 수사’가 도쿄 경시청에 도입된지 올해 17년째를 맞았다. 마치 사막에서 바늘 찾기처럼 무모해 보인다. 그러나 신주쿠(新宿)역, 이케부쿠로(池袋)역 같은 혼잡한 어딘가에서 쏟아지는 인파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찾아낸 용의자가 어느새 1,000명을 넘어섰다. 이 때문에 최첨단 방범카메라와 과학수사 기법이 진화하는 지금 ‘아날로그식 수사’를 고집하는 이들의 정체가 재조명되고 있다.
“길게 옆으로 째진 눈매가 바로 그 용의자와 같다!” 지난 1월초 도쿄의 한 터미널에서 미아타리 수사요원의 눈이 커졌다. 뒤로 다가가 이름을 부르자 용의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지난해 12월 절도혐의로 수배된 남자로 미아타리 수사반이 체포한 1,000명째 성과였다.
요미우리(讀賣)신문에 따르면 도쿄경시청 수사공조과에 전문팀이 발족된 것은 2001년 3월. 앞서 이런 육감에 의존하는 수사기법을 운영해온 오사카(大阪)부경에서 한 달간 노하우를 전수받은 수사관 3명으로 첫 팀을 꾸렸다. 도쿄 경시청은 실적이 쌓이면서 인원이 수십명으로 보강됐고 연간 90명 안팎의 수배자를 체포하게 됐다. 2013년 1월엔 강도살인미수 용의자를 도쿄 도시마(豊島)구에서 발견했고 작년 10월엔 공소시효가 끝나기 직전의 폭력단원을 붙잡았다.
수사팀의 일과는 수배자 얼굴보기로 시작된다. 두꺼운 수첩에 500명의 사진이 첨부돼있다. 돋보기로 확대해 관찰하며 수백명의 인상착의를 머릿속에 넣고 있다. 주목하는 부분은 수배자들의 눈매다. 세월이 흐르거나 성형수술을 해도 얼굴의 골격이나 눈ㆍ코 라인 특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머리 스타일이나 수염으로 변신하는 경우가 흔해 겉모습보다 원초적인 인상을 상상해 기억하는 식이다. 20년 전 조각 사진 1장으로 40대 여성 용의자를 체포한 사례는 이 때문이다.
영어단어장을 암기하듯 반복하고 반복하다 보니 꿈속에서 수배자와 이야기하는 장면이 등장할 때도 있다고 한다. 이들 수사관은 5시간 넘게 한 곳에 서서 행인들을 주시하기도 한다. 수상한 사람이 파친코에 앉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암기훈련때 사진의 다른 부분은 가리고 눈가만 식별하는 연습으로 단련돼 진가를 발휘한다.
도쿄도(東京都)에는 1만3,500여대의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수사에 활용되고 있다. 영상의 화질은 날로 향상되고 있지만 변장술이나 연령에 따른 변화를 좇기엔 한계가 있다. 한 미아타리 수사관은 “형사의 기억력과 엄청난 노력에 따른 직관적 식별능력은 방범카메라가 따라올 수 없다”며 “거리에서 순간의 집중력으로 스치는 용의자 얼굴을 맞닥뜨릴 때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고 말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