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 배후에 러 유착설 수사 실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전 국장에게 자신이 FBI의 러시아 유착설 수사 대상인지를 여러 차례 질문했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이메일 스캔들 수사에 대한 불만으로 코미 국장을 파면했다는 기존 설명과 달리 파면 배후에 러시아 유착설 수사가 있다는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이 실토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바꾸기로 코미 전 국장이 파면된 배후를 둘러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미 NBC 방송 레스터 홀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코미 전 국장이 요청해 취임 무렵 식사를 한번, 통화를 두 번 하면서 자신의 수사대상 포함여부를 질문했고 ‘포함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코미 전 국장)에게 ‘가능하다면 내가 수사대상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했고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미 전 국장은 ‘과시하고 싶어하는 사람’(showboat)이고 ‘주목받고 싶어하는 사람’(grandstander)”이라며 “나도 알고 당신도 알듯 FBI는 혼란에 빠져있었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이어 “파면하기로 결심했을 때 이 결정으로 ‘트럼프와 러시아 관계에 대한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에게는 핑곗거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고도 했다.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차관의 권유로 코미 전 국장을 파면했다는 기존 주장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파면결정을 하는데 FBI의 유착설 수사가 영향을 줬다는 사실을 시인한 셈이다.
이 인터뷰가 공개된 뒤 대통령이 FBI 수장에게 자신에 대한 수사여부를 묻는 게 일종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NBC는 “대통령 행동은 이례적이며 많은 법률 전문가가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고 전했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코미 전 국장에게 수차례 충성 맹세를 요구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코미 전 국장 측근 인사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1월 27일 코미 전 국장과 독대 중 거듭 이와 같은 요구를 했으며 코미는 이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이에 “트럼프는 전통적으로 FBI 수장에게 정치적 충성이 필요치 않다는 점을 몰랐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사태가 확산되면서 특별검사 임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CBS는 이날 매사추세츠, 캘리포니아, 코네티컷 등 20개주 법무장관이 로젠스타인 차관에게 지난해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간 내통 의혹 수사를 위해 특별검사를 임명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탄핵 목소리도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 전 국장 파면한 사태를 유나이티드항공의 악명 높은 '승객 강제 끌어내기' 조치에 빗댄 미 주간지 ‘뉴요커’표지도 화제다. 11일 뉴요커는 트럼프 대통령과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 코미 전 FBI 국장을 항공기에서 질질 끌어내는 모습을 담은 22일자 표지를 미리 공개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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