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도서관 밤샘 개방 늘면서
술 냄새 풍기고 코골이 등 백태
“시험기간 큰맘 먹고 왔는데…”
열람실 열공족과 실랑이 잦아
공부 의무감에… 막차 끊겨서…
“주머니 사정 이해를” 하소연도
“술 마셨으면 집으로 가야지, 왜 도서관으로 옵니까?”
서울 마포구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최모(26)씨는 중간고사가 한창이던 지난달 말,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서 또 다른 학생 A씨와 한바탕 말다툼을 벌였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술에 취해 도서관 열람실에 들어온 A씨의 ‘숙면’이 발단이었다. 술 냄새를 풍기면서 시끄러운 휴대폰 진동소리조차 듣지 못한 채 골아 떨어져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게 최씨 얘기. 그는 “코를 찌르는 술 냄새와 귀가 따가운 휴대폰 소리를 계속 참긴 어려웠다”며 “A씨를 깨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날 A씨는 학생들의 눈총에 결국 가방을 싸 들고 조용히 도서관 밖을 나서야 했다.
대학 도서관이 ‘음주 학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도서관을 밤샘 개방하는 대학이 늘면서 일부 학생이 술을 마신 뒤 밤 늦게 도서관을 이용하는 통에 여기저기 실랑이가 자주 벌어지는 상황이다. 진동하는 술 냄새에, 시끄러운 코골이 소리에 참다 못한 학생들이 ‘도서관이 숙소냐’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피해 학생들은 ‘집으로 가거나 제발 오더라도 기본 매너와 공중도덕은 지켜달라’고 호소한다. 건국대 신입생 정모(19)씨는 11일 “24시간 영업하는 카페나 PC방 등 첫차를 기다릴 만한 곳이 많다”며 “가뜩이나 예민한 시험기간에 ‘음주 입실’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명지대 2학년 권모(20)씨도 “큰 마음을 먹고 밤샘 공부하러 도서관을 찾았는데, 도서관 앞에서도 맥주를 마시는 학생들이 있었다”며 “그 뒤론 밤샘 공부가 필요하더라도 도서관 대신 집에서 했다”고 말했다. 도서관 실내에서 라면 등 취식행위를 서슴없이 하고, 게임은 물론이고 스포츠 경기를 휴대폰으로 보는 학생들도 있다면서 “학교가 강력한 주의나 제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높다.
음주 학생들도 할 말은 있다. ‘도서관 취침’을 여러 번 해봤다는 대학생 조모(24)씨는 “경기 안산시 집에서 학교가 있는 서울 성동구로 매일같이 통학하는데, 지하철 막차가 끊기면 집에 갈 일이 막막해 도서관에서 잘 때가 있다”며 “용돈과 통학시간 절약을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주머니 사정을 이해해달라는 얘기다. “시험기간에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술을 마신 뒤에도 도서관을 가는 것”이라는 학생들도 있다.
서울의 대학 관계자는 “대부분 학교가 학생들의 학습공간 보장을 위해 밤샘 개방을 시행하는 만큼, 도서관의 본래 활용 목적에 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기말고사 때부턴 안내문 추가 부착 등 여러 대책들을 논의해보겠다”라고 전했다.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는 “술에 취해도 기본적인 사회규범은 잊지 말아야 한다.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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