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을 두고 국제법으로 정당했느냐는 논란이 인 적이 있다. ‘전쟁법’으로 알려진 ‘전시국제법’에 따르면 전쟁 중이라도 전투와 관련 없는 민간인 살상은 허용되지 않는다. 미국이 선언한 ‘테러와의 전쟁’을 전쟁으로 볼 수 있는지, 또 그렇더라도 민간인 복장을 한 빈 라덴을 전투원으로 규정해 사살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다. 시민봉기로 비참한 최후를 맞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의 경우도 비슷하다. 분노한 시민의 손에 죽임을 당했지만, 미국 등 서방은 카다피의 목숨을 노린 표적 폭격을 서슴지 않았다.
▦ 북한이 미국인 억류 사실을 잇따라 공개해 파장이 일고 있다. 3일 북한 대학에 초빙됐던 미국인 교수를 ‘적대행위’ 혐의로 억류한 데 이어 7일 또 다른 미국인을 같은 혐의로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은 4명으로 늘어났다. 한국인 등 다른 국가 국민까지 포함하면 모두 9명이 북한에 잡혀 있다. 억류 명분으로 ‘반공화국 행위’를 뒤집어씌우지만, 실상은 납치나 다름없다. 2년 넘게 억류됐다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는 비망록에 “북한 검사가 ‘중요한 것은 재판 후 미국의 대응’이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전쟁법에도 금지돼 있는 민간인 인질 행위다.
▦ 버릇이 된 북한의 인질극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 남북ㆍ북미 간 긴장이 고조됐을 때 민간인을 억류했다가 후에 대화의 명분과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2009년 빌 클린턴과의 면담 뒤 두 미국 여기자를 풀어 줬을 당시는 2차 핵실험 국면이었고, 지미 카터가 미국인 석방을 위해 방북한 2010년은 천안함 사건 뒤였다. 미국과 배씨 등에 대한 석방 협상을 하던 2013년은 3차 핵실험으로 북미가 초강경 대치하던 시기다. 북한이 미국인 억류사실을 연거푸 공개한 것도 험악할 대로 험악해진 최근의 북미관계를 의식한 행동일까.
▦ 3월 김정남 독살사건 때 북한은 말레이시아 국민 9명을 인질로 삼아 톡톡히 재미를 봤다. 이번에도 미국과의 대화를 끌어내기 위해 인질카드를 꺼냈을 듯싶다. 마침 네 번째 미국인 억류를 발표한 날 미국과의 1.5트랙 대화를 위해 북한 대표단이 출발했다는 게 공교롭다. 그러나 북미대화가 인질협상으로 시작될 수는 없는 일이다. 채찍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하긴 그만큼 미국과의 대화가 급했다는 신호일 수도 있겠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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