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후보 시절 “원점 재검토” 밝혀
예보 노조 등 철회 선언도 잇달아
“합의된 공기업은 되돌리기 힘들어”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노동ㆍ금융개혁 정책으로 추진된 금융권 성과연봉제가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함께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성과연봉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이에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이 지지 성명까지 내면서 이를 추진하던 금융당국이 더 이상 추진 동력을 갖기 어려울 거란 평가가 나온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권 안팎에선 벌써부터 성과연봉제가 박근혜 정부 금융정책 중 퇴출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성과연봉제는 호봉제 중심의 보수 체계에서 벗어나 성과급 비중을 늘리는 방식이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의 강한 드라이브에 예금보험공사, 주택금융공사 등은 지난해 노사합의로 이를 도입했다. 산업은행ㆍ기업은행ㆍ신용보증기금, 자산관리공사 등 7개 금융공기업은 노조 반발을 피해 이사회 의결이라는 우회로를 거쳐 역시 도입을 강행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성과중심 문화는 금융권에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로 민간 금융권에도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하자 시중은행들도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지난해 7월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시행을 준비해왔다. 부ㆍ팀ㆍ지점별로 이뤄지던 기존 성과평가 방식을 개인으로 확대하고, 호봉제 폐지와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한 ‘페이밴드(Pay Band)’를 운용하는 게 가이드라인의 골자다. 은행들은 지난해 말 긴급 이사회를 통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사태와 조기대선 과정에서 금융권 성과연봉제는 어느덧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정부가 노동자 측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박근혜식 성과연봉제에 반대한다”며 ‘원점 재검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금융노조는 지난달 14일 “박근혜 정권은 저성과자 해고를 위한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요했다”며 성과연봉제 폐기를 전제로 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최근엔 이미 제도를 도입한 금융 공공기관 노조들의 ‘철회 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예보 노조는 지난달 2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주택금융공사 노조도 "작년 7월 노사합의 이전으로 원상복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이던 금융당국도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입장 선회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분위기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민간 금융사까지 성과연봉제를 확대하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선 지나치게 경직된 현행 서열 위주의 임금체계를 어떻게든 손봐야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지난 6일 “대선 후보들도 현재 호봉제의 폐단을 개선하는 데는 반대 입장이 아닌 만큼 어떤 형태로든 성과제 방식을 도입할 것으로 본다”고 밝히기도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미 제도를 도입한 금융 공기관들까지 원점으로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새로운 직무급제 도입 필요성’은 거론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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