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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도장 잘 찍혔는데 왜 미분류표냐” 송곳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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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도장 잘 찍혔는데 왜 미분류표냐” 송곳 질문

입력
2017.05.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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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별 참관인 60명 전 과정 촬영

“애매한 표 다시 체크” 요청하면

심사ㆍ집계부서 유ㆍ무효 가려져

“눅눅해지지 않게” 투표함 속 방습제

인터넷 의혹 ‘다른 버전 투표용지’ 없어

한국일보 손현성 기자(가운데)가 9일 오후 경기 과천시 청소년수련관에서 대선 개표사무원으로 참여해 참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투표지 분류기를 통해 나온 표들을 묶고 확인하고 있다. 신혜정 기자.
한국일보 손현성 기자(가운데)가 9일 오후 경기 과천시 청소년수련관에서 대선 개표사무원으로 참여해 참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투표지 분류기를 통해 나온 표들을 묶고 확인하고 있다. 신혜정 기자.

9일 오후 7시쯤 경기 과천시청소년수련관 대선 개표소. 투표 마감 전부터 ‘개표 참관’이라 적힌 조끼를 입은 시민 20여명이 한 테이블로 몰려 들었다. 후보별 유효표와 미분류표(무효표+애매한 표)를 가리는 투표지 분류기가 놓인 곳이었다. 이들은 스마트폰과 카메라로 분류기 전원부, 개표관리 프로그램 화면 등을 샅샅이 찍었다.

“각 투표구별 현재 0(표)인 것 확인하셨죠?” 개표사무원이 본격 개표 전 투표구별 후보 득표 상황 등 모든 세팅이 초기화돼 있음을 참관인들에게 보여줬다. 분류기에 연결된 외부 통신망이 없어 해킹 조작 가능성이 없다는 점도 확인됐다. 각 후보 진영 등에서 나온 개표참관인 60명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살벌한 분위기에서 개표가 시작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협조를 받아 한국일보 손현성ㆍ신혜정 기자가 국내 언론 사상 처음으로 대선 개표 사무원으로 역사적 현장에 참여했다.

오후 8시 20분쯤 첫 투표함이 도착했다. 참관인들은 투표함 자물쇠와 특수 봉인지 등을 일일이 사진 찍고 확인했다. 테이블 위로 민심이 쏟아지자 “바닥에 떨어지는 표가 없게 하라”는 외침이 장내에 퍼졌다. 참관인들은 개표 사무원 뒤에 바짝 붙어 한 표라도 빠지지 않는지 주시했다. “개표 사무원들에게 과도하게 밀착하진 말아달라”는 방송이 거듭 나올 만큼 감시 열기는 달아올랐다.

개표 한 시간 뒤 문제가 생겼다. 투표함 뚜껑과 함 연결 부위에 제대로 잠기지 않은 자물쇠가 발견됐다. 한 여성 참관인은 “문제가 발견됐는데 선 조치 없이 투표지가 테이블에 쏟아졌다”며 언성을 높였다. 이에 자물쇠를 잠갔던 투표소 쪽 공무원이 달려와 확인서를 쓰는 등 잠시 혼선을 빚기도 했다. 개표 중에 시선관위 직원이 투표함 속 방습제를 보이며 “비에 투표지가 눅눅해지지 않게 조치한 것이니 오해하지 마시라”고 할 정도로 개표는 엄격한 시민의 눈 앞에서 이루어졌다.

표 뭉치는 이날 개표사무원으로 참여한 기자 앞에 놓인 분류기 투입구로 빨려 들어가면서 순식간에 각 후보별ㆍ미분류표 칸(적재함) 12곳으로 ‘착착’ 소리를 내며 쌓여갔다. 각 칸마다 50장이 모여 빨간 불이 켜지면 잽싸게 투표지를 빼내 고무줄로 묶었다. 자칫 한눈을 팔면 분류가 멈춰 개표가 지연되기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참관인들의 송곳 질문이 쏟아졌다. “왜 후보명 옆 빈칸에 도장이 하나만 정확히 찍혔는데 미분류표가 되는 거요?” 한 칸 안에 제대로 찍혔더라도 진하게 표시돼 조금이라도 번지면 미분류표로 분류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명확한 기표만 걸러낼 정도로 기계의 민감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런 표들은 심사ㆍ집계부 테이블에서 가려졌다. 미분류표를 한 장씩 확인해 유ㆍ무효를 가리고, 후보자별 유효표 중 다른 후보 표나 무효표가 섞였는지 확인하고 득표수를 집계하는 곳이다. 투표지를 세는 장치에 50장씩 올려 버튼을 누르고, 30초 동안 한 장씩 떨어지는 표를 눈으로 확인했다. 한 계수기당 사무원 2, 3명이 함께 투표지를 확인해 집계 오류는 없었다. 투표 도장이 반쯤 찍혀 있는 등 애매한 표가 나오면 “다시 확인해달라”는 외침이 등 뒤에서 빗발쳤다. 이미 확인된 표 묶음을 풀어 두 세 차례 재계산하는 일이 반복됐다.

미분류표 확인 작업에는 더 날카로운 눈길이 쏠렸다. 개표사무원의 유ㆍ무효 판단에 따라 표의 운명이 갈려서다. 3번 후보 기표란에 도장이 찍혔지만, 5번 후보에도 초승달 모양의 흔적이 걸친 투표용지가 논란이 됐다. 그 흔적이 기표 도장으로 인정되면 무효다. 미분류표 확인사무원과 참관인들이 이 표의 유효성을 두고 옥신각신했다. 개표 위원들의 최종 판단 결과, 5번 쪽 흔적은 앞서 투표했던 유권자가 기표용구를 시험해보느라 기표소 책상에 찍었던 잉크가 다음 유권자 표에 묻은 것으로 결론이 났다.

최근 인터넷에서 의혹이 제기된, 후보자간 여백 간격이 다른 버전의 투표용지는 개표과정에 찾아볼 수 없었다. 개표소 통제선 밖에선 쌍안경으로 개표 과정을 지켜보는 일반 시민도 있었다. 대선이 끝날 때 마다 약방 감초처럼 나오는 개표 부정 음모론. 투표지분류기 사전 점검 절차 공개 등 투명한 개표 과정, 매 단계 시민 감시가 철저한 현장 상황을 감안하면 개표 과정에 부정 개입 소지는 없어 보였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한국일보 신혜정(가운데) 기자가 투표지를 심사집계기에 투입해 확인하고 있다. 손현성 기자
한국일보 신혜정(가운데) 기자가 투표지를 심사집계기에 투입해 확인하고 있다. 손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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