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별 참관인 60명 전 과정 촬영
“애매한 표 다시 체크” 요청하면
심사ㆍ집계부서 유ㆍ무효 가려져
“눅눅해지지 않게” 투표함 속 방습제
인터넷 의혹 ‘다른 버전 투표용지’ 없어
9일 오후 7시쯤 경기 과천시청소년수련관 대선 개표소. 투표 마감 전부터 ‘개표 참관’이라 적힌 조끼를 입은 시민 20여명이 한 테이블로 몰려 들었다. 후보별 유효표와 미분류표(무효표+애매한 표)를 가리는 투표지 분류기가 놓인 곳이었다. 이들은 스마트폰과 카메라로 분류기 전원부, 개표관리 프로그램 화면 등을 샅샅이 찍었다.
“각 투표구별 현재 0(표)인 것 확인하셨죠?” 개표사무원이 본격 개표 전 투표구별 후보 득표 상황 등 모든 세팅이 초기화돼 있음을 참관인들에게 보여줬다. 분류기에 연결된 외부 통신망이 없어 해킹 조작 가능성이 없다는 점도 확인됐다. 각 후보 진영 등에서 나온 개표참관인 60명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살벌한 분위기에서 개표가 시작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협조를 받아 한국일보 손현성ㆍ신혜정 기자가 국내 언론 사상 처음으로 대선 개표 사무원으로 역사적 현장에 참여했다.
오후 8시 20분쯤 첫 투표함이 도착했다. 참관인들은 투표함 자물쇠와 특수 봉인지 등을 일일이 사진 찍고 확인했다. 테이블 위로 민심이 쏟아지자 “바닥에 떨어지는 표가 없게 하라”는 외침이 장내에 퍼졌다. 참관인들은 개표 사무원 뒤에 바짝 붙어 한 표라도 빠지지 않는지 주시했다. “개표 사무원들에게 과도하게 밀착하진 말아달라”는 방송이 거듭 나올 만큼 감시 열기는 달아올랐다.
개표 한 시간 뒤 문제가 생겼다. 투표함 뚜껑과 함 연결 부위에 제대로 잠기지 않은 자물쇠가 발견됐다. 한 여성 참관인은 “문제가 발견됐는데 선 조치 없이 투표지가 테이블에 쏟아졌다”며 언성을 높였다. 이에 자물쇠를 잠갔던 투표소 쪽 공무원이 달려와 확인서를 쓰는 등 잠시 혼선을 빚기도 했다. 개표 중에 시선관위 직원이 투표함 속 방습제를 보이며 “비에 투표지가 눅눅해지지 않게 조치한 것이니 오해하지 마시라”고 할 정도로 개표는 엄격한 시민의 눈 앞에서 이루어졌다.
표 뭉치는 이날 개표사무원으로 참여한 기자 앞에 놓인 분류기 투입구로 빨려 들어가면서 순식간에 각 후보별ㆍ미분류표 칸(적재함) 12곳으로 ‘착착’ 소리를 내며 쌓여갔다. 각 칸마다 50장이 모여 빨간 불이 켜지면 잽싸게 투표지를 빼내 고무줄로 묶었다. 자칫 한눈을 팔면 분류가 멈춰 개표가 지연되기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참관인들의 송곳 질문이 쏟아졌다. “왜 후보명 옆 빈칸에 도장이 하나만 정확히 찍혔는데 미분류표가 되는 거요?” 한 칸 안에 제대로 찍혔더라도 진하게 표시돼 조금이라도 번지면 미분류표로 분류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명확한 기표만 걸러낼 정도로 기계의 민감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런 표들은 심사ㆍ집계부 테이블에서 가려졌다. 미분류표를 한 장씩 확인해 유ㆍ무효를 가리고, 후보자별 유효표 중 다른 후보 표나 무효표가 섞였는지 확인하고 득표수를 집계하는 곳이다. 투표지를 세는 장치에 50장씩 올려 버튼을 누르고, 30초 동안 한 장씩 떨어지는 표를 눈으로 확인했다. 한 계수기당 사무원 2, 3명이 함께 투표지를 확인해 집계 오류는 없었다. 투표 도장이 반쯤 찍혀 있는 등 애매한 표가 나오면 “다시 확인해달라”는 외침이 등 뒤에서 빗발쳤다. 이미 확인된 표 묶음을 풀어 두 세 차례 재계산하는 일이 반복됐다.
미분류표 확인 작업에는 더 날카로운 눈길이 쏠렸다. 개표사무원의 유ㆍ무효 판단에 따라 표의 운명이 갈려서다. 3번 후보 기표란에 도장이 찍혔지만, 5번 후보에도 초승달 모양의 흔적이 걸친 투표용지가 논란이 됐다. 그 흔적이 기표 도장으로 인정되면 무효다. 미분류표 확인사무원과 참관인들이 이 표의 유효성을 두고 옥신각신했다. 개표 위원들의 최종 판단 결과, 5번 쪽 흔적은 앞서 투표했던 유권자가 기표용구를 시험해보느라 기표소 책상에 찍었던 잉크가 다음 유권자 표에 묻은 것으로 결론이 났다.
최근 인터넷에서 의혹이 제기된, 후보자간 여백 간격이 다른 버전의 투표용지는 개표과정에 찾아볼 수 없었다. 개표소 통제선 밖에선 쌍안경으로 개표 과정을 지켜보는 일반 시민도 있었다. 대선이 끝날 때 마다 약방 감초처럼 나오는 개표 부정 음모론. 투표지분류기 사전 점검 절차 공개 등 투명한 개표 과정, 매 단계 시민 감시가 철저한 현장 상황을 감안하면 개표 과정에 부정 개입 소지는 없어 보였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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