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으로서 동네를 돌보는 건 당연한 의무 아닙니까?”
의용소방대원으로 강원 강릉시 성산면 일대 산불 진화에 나섰던 이재근(51)씨는 10일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손사래를 쳤다. 6일 오후 3시30분쯤 산불 발생 소식에 곧장 관음1리 집으로 가, 가족을 대피시킨 뒤부터 사흘간 꼬박 화마와 싸우면서 쌓였을 피로감은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다.
화재와 맞선 이씨의 활약상은 동네 주민들에게 화제다.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불이 이웃집 두 채를 태우고, 동네 전체를 휩쓸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이씨는 주저하지 않고 전기와 가스를 차단하고 불에 탈 만한 인화물질들은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등 ‘화재 발생시 대처법’을 그대로 행동에 옮겼다.
거센 연기가 덮쳐오자 오토바이 헬멧과 물에 적신 마스크를 착용하는 임기응변도 발휘했다. 이씨는 “수도꼭지에 연결한 호스로 1시간 정도 불길을 붙잡아 둔 덕에 이후 도착한 소방차가 진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의용대원으로서 겪은 그간의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다음날부터 이웃 어흘리로 나가 산불진화 작업에 나섰다가 산길에서 발을 헛디뎌 늑골 부위를 다치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산불 현장은 떠나지 않았다.
이번 강원 일대를 덮친 화마와의 싸움에는 이씨를 포함한 의용소방대원들의 활약이 혁혁했다. 강릉시 소속 6개 의용소방대 약 600명이 불길이 잡히기까지 화재 현장에 투입됐는데, 이들은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좁은 길에 산불진화차량을 타고 진입하거나 등짐펌프를 짊어지고 산을 올랐다. 특히 성산의용소방대장 김호정(52)씨 등은 화재 현장에서 3일간 밤을 샜는가 하면, 일부는 8일 새벽 2시에 집에 복귀했다가 산불이 재발했다는 소식에 곧장 다시 달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생업을 내려 놓은 채 화재 현장을 누볐던 의용소방대원들에게 주어진 보상은 겨우 하루 4만원, 사흘을 일했다면 12만원에 불과했다. 의용소방대법 시행규칙에 하루 최대 4시간만 출동수당(시간당 1만800원)을 지급하도록 제한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차량 위에서 쪽잠을 자면서 거의 하루 종일, 일부는 2박3일 일한 대가치곤 박하다. 그나마도 의용소방대원들은 이를 사무실 운영비와 장비 수리에 모두 사용하고 있다. 강릉소방서의 한 관계자는 “고생하신 분들에게 넉넉히 보답하고 싶지만 법규에 정해진 제한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박찬석 우송정보대학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는 “수도권에 비해 소방인력이 부족한 지방에서 직접 화재 현장에 출동하는 의용소방대는 귀한 존재”라며 “보상은 턱없이 적은 만큼 실질적인 지원이 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릉=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