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장수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개콘’)가 900회를 맞았다. ‘개콘’는 지난 1999년 9월 첫 전파를 탄 뒤 ‘사바나의 아침’ 등 인기 코너로 시청률 30~40%까지 올리며 ‘국민 예능’이라는 수식을 얻었다. 2000년대 초반 방청객과 함께 하는 ‘공개 코미디’ 포맷으로 개그 프로그램의 르네상스를 열었으나 촌철살인의 정치 풍자 개그가 사라지며 최근 시청률 침체기를 겪고 있다.
10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별관 공개홀에서 열린 900회 기자간담회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축하보다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더 높았다. 2015년 후반 10%초반대로 떨어진 시청률은 현재 한 자릿수다. 최근 ‘민상토론2’ ‘대통령’ 등 정치 풍자개그를 내놓았지만 고민 없는 말장난 식의 개그가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정치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민상토론’이 갑자기 폐지되고 메인 PD까지 교체되면서 외압설이 돌기도 했다.
‘개콘’의 이정규 PD는 “어떤 풍자는 신랄하고, 또 어떤 풍자는 직접적이어서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다”며 “하지만 외압은 없다. 정치 풍자 개그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 PD는 유민상을 중심으로 한 정치 풍자 개그를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이 PD는 “대통령도 바뀌었으니 유민상과 함께 ‘민상토론’ 같은 위트 있고 현실을 꼬집는, 많은 분들이 불편하지 않는 풍자 코너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900회 특집 프로그램이 분수령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900회를 3주에 걸쳐 방영하면서 그 기간에 새로운 코너들을 준비하겠다는 복안이다. 이 PD는 “특집이 끝나면 절반 이상의 코너를 바꿔서 대대적인 변화를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900회 특집에는 유재석과 유세윤 강유미 김준현 등 개그맨들과 함께 아이돌그룹 트와이스가 출연한다.
‘개콘’의 출발을 함께 했던 개그맨 김준호와 김대희도 고민을 같이 하고 있다. 김대희는 “미국만 해도 다양한 소재로 코미디를 하지만, 유독 대한민국만 제약이 많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개그맨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달라”고 말했다. 그는 “(정통)개그 프로그램은 ‘개콘’ ‘웃찾사’(SBS) ‘코미디 빅리그’(tvN) 달랑 3개다”며 “대한민국 코미디 프로그램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닌가 우려된다”고 응원을 부탁했다. 김준호는 “예전에 정치 풍자 개그를 하면 보이지 않게 눈치가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며 “선진국 코미디처럼 당당하게 코미디를 하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준호는 “문재인 대통령도 ‘개콘’에 출연하는 등 코미디를 함께 해줄 수 있는 여유 있는 대통령이 되셨으면 한다”고 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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