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5.10
1996년 5월 10일, 네팔을 거쳐 에베레스트 남면루트로 이른바 ‘상업등반’에 나섰던 가이드와 고객 5명이 악천후에 조난 당해 숨졌다. 중국 티베트를 통해 북면을 오르던 인도 산악인 3명도 그날 희생됐다. 고지 등반 역사상 최악의 그 참사는 심각한 후유증과 더불어 등반 윤리 전반에 커다란 물음을 남겼다.
사고 원인은 단순했다. 예상과 달리 일기가 악화했고, 체력을 소진한 관광객들이 낙오하면서 하산 타이밍을 놓친 탓이었다. 큰 돈 들여 온 이들은 드물게 좋은 날씨에 몰려 등반하기 마련. 당일 새벽 총 3팀이 거의 동시에 정상 도전에 나섰고, 정상 직전 수직 난구간인 ‘힐러리 스탭’에서 병목 현상을 빚었다. 하산용 고정 로프 등 미리 갖춰져 있어야 했던 안전조치가 미비했다는 점 등 사소한 실수들도 겹쳤다. 일류 등반가로 꼽히던 ‘어드벤처 컨설턴트’의 뉴질랜드 출신 산악인 롭 홀과 ‘마운틴 매드니스’의 미국 산악인 스콧 피셔가 고객 3명과 함께 숨졌다. 상업등반 르포를 위해 롭 홀 팀에 합류했던 ‘아웃사이드’지 기자 존 크라카우어는 무사히 하산해 참사 정황과 문제점을 기사와 책으로 썼고, 그 일로 가담자의 공과에 대한 논란과 상업등반 자체의 윤리시비에 기름을 부었다.
상업등반이 시작된 것은 1980년대 말부터였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의 1953년 초등 이래 숱한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덜 힘든 루트들이 개척됐고, 기술과 장비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에베레스트가 심정적으로 만만해지면서, 전문 산악인들은 경비를 대줄 스폰서를 못 구해 애를 태웠다. 상업등반은 자력으로라도 그 비용을 마련해보려다 시작한 일이었다. 초보자들의 등정을 도와주고,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신들의 도전을 지속하려던 거였다. 제 돈으로 등반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상업등반을 성토하는 이들만큼이나 그 성토를 성토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돈에 눈이 멀었다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두 리더는 고객과 함께 하산하느라 목숨을 잃었고, 크라카우어의 책에서 욕을 먹은, 스콧 피셔 팀 가이드였던 러시아 산악인 아나톨리 부크레예프가 고군분투 끝에 고객 3명을 구출한 사실도 훗날 밝혀졌다. 당일 조난당한 인도 산악인 3명을 외면한 채 하산한 건 일본의 ‘전문’등반대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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