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대선 선거운동원으로 두 번 참여했다. 대학생이던 1992년에는 소위 ‘민중 대통령’ 후보의 선거 운동원으로 지역 사회에서 활동했다. 학교 밖 사회가 궁금해서 지역 활동을 자원했고, 거리 홍보를 나갔다가 아저씨들에게 잡혀 학생들이 끼어들어 야당 표를 가져간다고 된통 혼났던 기억이 있다. 2002년에는 이직을 위해 몇 주 쉬는 기간이 마침 대선과 겹쳐서 진보 정당의 운동원으로 뛰었다. 당비 꼬박꼬박 내는 진성당원이지만 출퇴근 시간에 거리에서 선전전 정도나 참여하는 뜨내기 운동원이었다. 선거 당일에는 개표 참관인을 마치고 당원들과 맥주 집에서 개표 결과를 보며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환호했다.
아저씨들의 호통에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다른 당 후보의 당선에 환호하는 당성 부족한 진보정당 당원이었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대선 때마다 바라는 것은 같다. 지금보다 나은 세상. 성별, 노동, 계급, 인종의 다름이 차별의 원인이 되지 않는 세상.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고, 다름이 존중 받는 세상으로의 전진.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취약한 민주주의는 쉽게 흔들리고 다원성은 거부된다. 느린 전진과 때때로 광폭의 후진.
그럼에도 동물권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 나는 이번 대선에서 시대의 변화를 느낀다. 동물 문제는 정치에서 언제나 찬밥 신세였는데 대선 주자들이 모두 동물 정책을 내놓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반려동물, 길고양이 공약부터 야생·농장·전시 동물 등에 관한 내용이 두루 있다. 개식용의 단계적 금지, 동물진료 부가세 폐지 등 숙원과제도 눈에 띈다. 각 당에는 동물 관련 법안 발의와 통과 때 열심이었던 국회의원들이 있으니 실천력도 믿을 만하다. 동물권리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이다.
물론 현실은 여전히 척박하다. 최근 동물 진영을 분노하게 만든 판결은 길고양이를 잡아서 덫에 가둔 채로 끓는 물을 붓고,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찌르고, 개에게 물어뜯게 해서 죽이는 과정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 기소된 동물학대범에게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다. 한 아파트의 경비원이 고양이를 초등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생매장하는 일도 일어났다. 다친 듯 보이는 고양이를 산 채로 묻으며 경비원은 ‘이렇게 묻어줘야 고양이가 편한 거’라고 아이들에게 설명한다. 묻는다. 인간의 고통과 고양이의 고통은 다른가. 어떻게 다른가.
현실은 악화된 듯 보이지만 타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잘못이라는 명쾌한 논리에 동의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은 전진한다. 실천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동물 해방’에 강제로 확인하기 전까지 차별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썼다. 또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에서는 걸출한 동물운동가 헨리 스피라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제목의 ‘모든 동물’에는 동물이기를 거부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동물인 인간도 포함이다. 헨리는 모든 변화는 조금씩 일어나지 혁명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우리가 동물학대범의 판결에, 고양이를 생매장한 경비원의 행동에 절망하면 안 되는 이유이다. 그리고 헨리는 실천을 강조한다.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55세까지 인권 운동을 하며 동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던 헨리가 달라진 건 지인이 버리다시피 맡긴 고양이를 입양한 후이다. 고양이를 보며 “뭐랄까, 지금 고양이와 노닥거릴 때가 아닌데”라고 생각하다가 곧 고양이에게 매혹되고 동물권 운동에 뛰어든다. 고양이와 노닥거릴 때가 아니라는 그의 중얼거림이 동물권 운동을 바라보는 흔한 시선이라서 피식 웃었다. 동물은 인간과 달라서 고통을 가해도 된다는 종차별은 성차별, 인종차별과 하등 다를 게 없는 편견의 형태이다. 인종, 성별, 생물 종에 상관없이 모든 존재의 권리는 동등해야 한다. 헨리가 동물문제에 관심을 쏟은 것은 고양이가 귀여웠기 때문이 아니라 동물권 운동이 그가 평생 해온 인권 운동과 다름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저씨들한테 욕을 먹으면서도 차별 없는 세상을 꿈꿨던 대학생은 이제 종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일한다. 내가 차별 받기 싫다면 타자가 차별 받는 것도 거부해야 하고, 그 타자에 동물이 포함되는 것이 2017년의 시대정신이 아닐까. 그러려면 동물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건건이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하고, 새 대통령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인간으로, 개로, 길고양이로, 멧돼지로, 고래로 태어나도 살만한 나라. 이게 공정한 나라이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피터 싱어,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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