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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빨리 바꾸고 싶어서요”…아침부터 이어진 투표 행렬

입력
2017.05.09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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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정치 몰라도 살만한 나라 만들어 달라”

“끝까지 보고 결정하고 싶어 사전투표 안 해”

“산불 탓 4일간 제대로 못 잤어도 투표는 해야”

9일 투표하기 위해 오전 6시 강릉 성산면보건소(성산제1투표소)에 찾은 시민들. 정반석 기자
9일 투표하기 위해 오전 6시 강릉 성산면보건소(성산제1투표소)에 찾은 시민들. 정반석 기자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가득한 하루였다. 오락가락 비가 내리는 등 하루 종일 이어진 궂은 날씨에도, 고농도 미세먼지의 기승에도 전국 각지에 마련된 투표소로 향하는 유권자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9일 서울 시내 주요 투표소는 오전 6시 투표가 개시되기 10~20분 전부터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시버스노동조합(남영동제2투표소)은 투표 시작 10분전부터 10여 명의 시민들이 찾았다. 5시 30분에 투표소에 도착해 가장 먼저 투표를 마친 박월룡(55)씨는 “(투표 당일인) 오늘도 일을 쉬지 않는다, 얼른 투표를 마치고 일을 가야 해 서둘러 나왔다”고 했다.

투표를 마쳐 홀가분하다는 듯 환히 웃으며 박씨는 “(차기 대통령이) 지역감정과 좌우대립, 두 가지만은 꼭 없애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 국민들이 정치를 몰라도 되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인해) 우리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가고, 지금은 정치 얘기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나, 정치인들이 정치를 아주 잘 해줘서 모든 게 굴러가고, 국민들이 정치를 모르고 살아도 살만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화여대ㆍ서강대 등 대학가가 가까워 20대 대학생과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거주하는 마포구 대흥동 양원학교(대흥동제2투표소)에서는 오전 6시 3분쯤 첫 투표가 진행됐다. 공부할 채비를 마친 채 투표를 하고 나서던 대학원생 김민혁(26)씨는 “중간고사는 끝났지만 빨리 투표를 마치고 학교 도서관에 가려고 일찍 나섰다”고 말했다.

사전투표를 하지 않고 9일까지 기다린 이유에 대해서는 “끝까지 후보들의 말과 행동을 본 뒤에 결정하고 싶어서 시간을 끌었다”며 “결국엔 차선의 후보에게 투표했지만…”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대선인 만큼 국민들이 원하는 변화의 방향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신뢰를 주는 대통령을 맞고 싶다”는 바람을 보였다.

관악구 대학동주민센터(대학동제1투표소)도 투표 시작 전부터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투표 시작 15분만에 55명이 다녀갔다. 대학동주민센터에서 가장 먼저 투표한 노모(35)씨는 “밤에 일을 한다. 일 끝나고 바로 투표하러 온 것”이라며 “사전투표에 참여하지 못해서 오늘만큼은 꼭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투표소를 찾았다”고 아침 일찍 투표소를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에 정말 실망을 많이 했다”며 “내 한 표가 조금이나마 나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웃으며 말했다. 대학동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임모(34)씨는 “일찍 투표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하루 빨리 다른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보고 싶어서 일찍 투표소를 찾았다”고 했다.

강서구 마곡중학교(방화1동제8투표소)에는 김양휘(56)ㆍ이희숙(48) 부부가 가장 먼저 소중한 한 표를 던지고 나왔다. 오전 4시 인근 교회를 찾아 새벽기도를 마친 뒤 투표장에 나왔다는 이들은 “내가 뽑은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새 지도자가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주길 기도했다”고 전했다. 남편 김양휘씨는 “새 지도자에게 가장 바라는 건 국민 화합”이라며 “자신의 반대편에 섰던 이들의 목소리도 새겨듣고 분열을 막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산불이 잡히지 않은 강릉은 여전히 소방 헬기들이 지나가는 와중에도, 투표 시작 30분 만에 70명이 넘는 시민들이 투표소를 향했다. 투표가 시작되고 성산면사무소(성산면제1투표소)를 제일 먼저 찾은 금산리에 사는 김모(79)씨는 “잔불이 계속 치고 나와서 4일 동안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며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하니까 투표소를 찾았다”고 힘겹게 말했다. 그는 “불 나고 제대로 씻지도 못했는데 투표하고 목욕하러 갈 것”이라며 “불도 빨리 잡히고 대한민국도 목욕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관음리 등 산불 피해가 집중된 지역은 하루 시내버스가 3대밖에 오지 않아 강릉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광버스 3대를 추가로 투입, 이재민을 포함한 주민들의 투표를 도왔다. 이복란(54·관음2리)씨는 “산불 났다고 투표 안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내가 이 나라 주인인데 주인임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신분증을 불길에 잃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임시 확인증이 발급됐다.

전남 신안 외딴섬 주민 789명은 선박과 차량 등을 이용해 섬 밖으로 나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섬으로 형성된 신안군에는 전체 14개 읍ㆍ면에 50개의 투표소가 설치됐으나 25개 소규모 섬에는 투표소가 마련되지 않았다.

반면 국토 최남단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도 유권자들은 기상 악화로 바닷길이 막히면서 발이 묶이는 등 투표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마라도 주민들은 이날 오전 10시30분 출발하는 첫 여객선으로 약 10㎞ 떨어진 모슬포항으로 이동해 대정여자고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할 예정이었지만, 풍랑주의보로 인해 마라도를 주소지로 둔 유권자 108명 중 사전투표를 하지 않은 20여명 정도가 발이 묶여 투표를 하지 못했다.

투표 과정에서 마찰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기 양주시 상패초등학교(은현면제3투표소)에서는 투표소를 잘못 찾은 60대 남성이 주소지를 재차 확인하는 선거사무원 따귀를 때려 경찰 조사를 받았고, 서울 강서구 방화동 송화초등학교(방화1동제4투표소)에서는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고 휴대폰으로 신분증을 찍어온 20대 남성이 투표를 할 수 있게 해 달라며 공무원들과 말다툼을 벌이다 돌아가기도 했다.

경기 남양주시에서는 A(58)씨가 생년월일까지 같은 동명이인이 사전투표를 한 것으로 전산 입력되는 바람에 투표를 하지 못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선관위는 이들의 여권 발급일자가 다른 것으로 파악, 뒤늦게 A씨에게 투표가 가능하다고 안내를 했다고 해명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강릉=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완도=박경우 기자 gwpark@hankookilbo.com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강서구 마곡중학교(방화1제8투표소)에서 가장 먼저 투표를 마치고 나온 김양휘(오른쪽)·이희숙 부부가 ‘인증샷’을 남기고 있다. 김형준 기자
강서구 마곡중학교(방화1제8투표소)에서 가장 먼저 투표를 마치고 나온 김양휘(오른쪽)·이희숙 부부가 ‘인증샷’을 남기고 있다. 김형준 기자
관악구 대학동 주민센터(대학제1투표소)는 투표 시작 15분만에 55명의 시민이 다녀갔다. 이상무 기자
관악구 대학동 주민센터(대학제1투표소)는 투표 시작 15분만에 55명의 시민이 다녀갔다. 이상무 기자
용산구 동자동 서울시버스노동조합(남영제2투표소)은 투표 시작 10분전부터 10여 명의 시민들이 찾았다. 신은별 기자
용산구 동자동 서울시버스노동조합(남영제2투표소)은 투표 시작 10분전부터 10여 명의 시민들이 찾았다. 신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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