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 영양소 각광 건강식품 봇물
소아청소년 60만명이 과잉 섭취
과다섭취땐 빈혈ㆍ골다공증 위험
특히 어린이들 성장발육 악영향
무조건 많이보단 균형섭취 중요
유아 경우 식사만으로도 충분량
섬유질 혹은 섬유소로 불리는 식이섬유는 무조건 많이 먹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식이섬유의 흡착 능력이 뛰어나 ‘몸 속의 청소부’로 불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식이섬유를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에 이은 ‘제6의 영양소’로 부른다. 시중에는 ‘고식이섬유ㆍ식이섬유 풍부’ 등으로 표시된 건강기능식품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식이섬유를 과다 섭취하면 지나친 가스 생산ㆍ복통 유발이나 악화, 비타민ㆍ미네랄ㆍ단백질 흡수 저해 등 오히려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식이섬유를 무분별하게 많이 먹기보다 적절한 식단을 통해 식이섬유의 균형 잡힌 섭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아청소년 60만명, 과잉 섭취”
현재 국내에서 식이섬유는 권장량 기준없이 충분섭취량만 설정돼 있다. ‘이 정도 먹으면 충분하다고 여겨지므로 더 이상 먹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보건복지부가 정한 ‘한국인의 영양소 섭취 기준’에 따르면, 식이섬유 1일 충분섭취량은 1~2세 최대 10g, 3~5세 최대 15g, 6세 이상 20~25g이다. 열량을 1,000㎉ 섭취할 때마다 식이섬유를 12g씩 추가 섭취하는 것을 기준으로 했다.
문진수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팀이 복지부와 한국영양학회의 ‘2015년 한국인의 영양소 섭취 기준’자료를 분석한 결과, 18세 이하 소아청소년 가운데 식이섬유를 충분섭취량 이상 먹는 사람이 60만명이었다. 적게는 3.7%에서 많게는 8.6%나 됐다. 문 교수는 “특히 2세 미만 유아는 일반적인 유아식과 식사에 포함된 식이섬유 양만으로도 충분하다”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따로 보충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성인에서는 식이섬유의 과다 섭취비율이 더 높았다. 충분섭취량 이상 섭취율은 50~64세가 37.8%로 가장 높았고, 65~74세 이상 33.5%, 75세 이상 31.0%, 30~40대 21.0%, 20대 10.8% 순이었다. 이동호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소화기능과 장내 유산균총이 확립되기 전인 영ㆍ유아기에 식이섬유를 과다 섭취하면 설사ㆍ복통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성장 장애ㆍ빈혈ㆍ골다공증 등 유발”
식이섬유의 효능은 흡착력에서 나온다. 물과 지방, 콜레스테롤에 달라붙어 몸 밖으로 배설함으로써 다이어트, 이상지질혈증 등의 개선을 돕는다. 하지만 과다 섭취하면 경련성 변비, 과민성 대장증후군, 가스 생성 등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김영성 신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식이섬유의 흡착력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아 철분ㆍ칼슘 등 소중한 미네랄까지 몸 밖으로 배출하기 때문에 식이섬유를 과다하게 섭취하면 빈혈과 골다공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성장기 어린이의 성장 발육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김지연 서울과학기술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식이섬유를 과다 섭취하면 철분 아연 칼슘 등 필수 미네랄과 지용성 비타민의 체내 흡수율이 낮아진다”고 했다. 김 교수는 “특히 어린이가 식이섬유를 과다하게 먹으면 성장 장애, 설사, 복부 팽만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식이섬유 섭취가 대장암 예방에 도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세계적인 영양학자인 콜린 캠벨은 자신의 책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서 섬유소를 많이 섭취한 사람들이 적게 섭취한 사람들보다 대장암에 걸릴 위험이 43%나 낮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식이섬유 섭취가 대장암 예방에 도울 것으로 기대되지만 대장암 발생 위험을 낮춘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며 “유방암 등 다른 암 예방 효과는 학계에서 인정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의료계에서는 일부 소화기계 질병에 걸린 환자에게 식이섬유를 제한하고 있다. 이동호 교수는 “급성 게실염(憩室炎)이 있거나 크론병ㆍ궤양성 대장염이 급격히 악화됐거나 대장암 또는 수술 후 장 유착 등으로 장폐색이 우려될 때는 식이섬유 섭취를 잠시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과민성 장중후군 환자도 식이섬유의 과다섭취는 손해다. 이 교수는 “식이섬유가 풍부한 밀기울(밀에서 가루를 빼고 남은 찌꺼기)은 과민성 장증후군 환자의 55%에서 증상을 악화시키며, 10%에서만 호전됐다”며 “밀기울을 먹은 뒤 복통과 가스가 찬 느낌도 더 많이 호소했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식이섬유 적정 섭취 예시표>
*19세 이상 남자의 충분섭취량 ‘25g/일’을 충족할 수 있는 각 급원식품의 섭취 횟수
<자료: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연구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