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5.8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가 1794년 5월 8일 자코뱅 혁명정부의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그는, 이견이 없진 않으나 프랑스 민중의 고혈을 쥐어짜 축재한 세리(稅吏)그룹의 일원이었다.
부유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마자랭대학서 화학과 식물학, 수학 등을 공부했다. 당시 과학은 귀족 등 부유층의 취미이기도 해서, 그는 직업을 얻기 위해 법학을 따로 공부했지만 변호사가 되지는 않았다. 대신 벌이로 삼은 게 일종의 법인체인 수세조합(收稅組合, The Ferme Generale) 일원이 되는 거였다. 별도의 국세 징수기관이 없던 루이 16세의 프랑스는 징세 독점권을 팔았는데, 국가에 세액을 대납한 뒤 수수료를 얹어 세금을 징수하던 조직이 수세조합이었다. 세금에다 수수료까지 내야 했던 시민들은 고통스러웠지만, 귀족들은 국가가 보증한 그 짭짤한 독점 투자 수익을 누리며 좋게 말하자면 당대 파리의 패션과 예술과 과학을 성장시켰다. 세상이 그러했으니 라부아지에로선 자기 선택에 별 죄의식을 지니지 않았을지 모른다. 더군다나 그는 과학에 미쳐 있었다.
그는 집에다 첨단 실험실을 갖추고 왕립 병기창 일을 도우며 양질의 화약 제조기법을 연구했다. 훗날 미국으로 이민 가 굴지의 화학회사 뒤퐁을 설립한 창업주가 그의 제자 중 한 명이었다. 화학실험에 정밀 천칭저울을 활용하며 정량 분석을 중시한 최초의 과학자 중 한 명이 그였다. 거대 확대경으로 다이아몬드를 연소시켜 기체로 변한 뒤의 무게가 처음과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고(질량 불변의 법칙), 고열을 이용해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리하고, 또 같은 질량의 수소와 산소 기체로 물을 합성하기도 했다. 물이 원소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원소의 화합물이란 사실이 그렇게 그의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호흡과 발효, 부패 등이 산소 작용의 동일 원리(연소이론)로 진행된다는 사실도 그가 이룬 업적 중 하나였다. 최초의 근대화학 교과서로 꼽히는 원소 목록과 화학물 명명체계 등을 정리한 그의 ‘기초화학 총설’이 대혁명의 해인 1789년에 출판됐다.
그가 남긴 실험 자료와 연구성과를 정리해 세상에 내놓은 이는, 그의 둘도 없는 실험 조수이자 아내 마리 앤 라부아지에(1758~1836)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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