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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고매한 서정 지닌 영원한 어린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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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고매한 서정 지닌 영원한 어린아이”

입력
2017.05.0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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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주력한 1세대 영문학자지만

현실의 대중은 수필 몇 편만 기억

생애, 문학, 사상 3부로 나눠 소개

“맑은 서정 지닌 피천득 선생 작품

지금 이 시대에 읽어야 하는 이유”

정정호 명예교수는 스승 피천득의 문학을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열 살에 어머니를 잃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을 멈췄다”고 평했다. “영문학 수업에 자주 언급한 시인 워즈워드의 영향을 받은 면도 보인다”고 덧붙였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정정호 명예교수는 스승 피천득의 문학을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열 살에 어머니를 잃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을 멈췄다”고 평했다. “영문학 수업에 자주 언급한 시인 워즈워드의 영향을 받은 면도 보인다”고 덧붙였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평생 욕심 없이, 깔끔하고 단정하게 살아가신 분이죠. 한국문학사에서 피천득 선생만큼 자기 생각과 문학, 삶을 일치시킨 지행일치의 인물은 없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금아(琴兒) 피천득(1910∼2007) 선생을 제자인 정정호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는 이렇게 기억했다. 번역으로 국내 영문학 기틀을 잡은 1세대 영문학자, 언행일치의 교육자, 한국 문학사에 서정문학의 획을 그은 수필가이자 시인은 그러나, 제대로 된 평전 하나 출간되지 못한 찬밥 취급을 받아왔다. 올해 타계 10주기를 맞아 피천득의 평전이 처음으로 출간됐다. 정 명예교수가 피천득의 생애와 문학을 갈무리해 엮은 ‘피천득 평전’(시와진실)이다.

최근 한국일보사를 찾은 정 명예교수는 “피천득 선생에 대한 평가는 너무 단편적이었다. 대중이 생각하는 것보다 깊이와 넓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필 몇 편만 기억되는 현실에서 이 분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3년간 준비해서 썼다”고 말했다. 정 명예교수는 서울대 영문과 재학시절인 1969년부터 4년간 피천득의 수업을 들었다. 저자는 스승 피천득을 “번역에 주력한 1세대 영문학자”로 기억했다. “강의는 학생들 의견을 끌어들여서 같이 논의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셨어요. 비평에서 ‘독자 반응 비평’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아주 획기적인 방법이었죠. 나중에 제가 교수되고 상당히 도움이 됐습니다.”

평론은 3부로 나눠 생애, 문학, 사상을 소개한다. 정 명예교수가 정의한 ‘문인’ 피천득은 “나이를 잃은 영원한 소년”이다. 아호부터 ‘거문고를 타고 노는, 때 묻지 않은 아이’라는 뜻으로 지었다. 피천득은 단순한 형식의 시에는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시선을 담았다. 영민한 머리는 불우한 생에 기회를 준다. 정 명예교수는 “금아는 시인으로 문단생활을 시작했지만, 사실 생애 최초로 발표한 건 번역 작품”이라고 밝혔다. 1926년 8월 동아일보에 4회에 걸쳐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번역해 실은 게 불과 16세 때였다. 경성제일고보(현 경기고등학교)를 2년 월반해 2학년이던 시절이었다. 부인을 통해 피천득이 신동이라는 소문을 들은 이광수는 피천득을 자신의 집에서 3년간 머무르게 하며 영어와 영시를 가르쳤다. 이광수 역시 열한 살에 부모를 여읜 고아였다. 피천득은 1926년 이광수의 권유로 중국 상하이 유학길에 오르고, 흥사단 단우가 돼 매주 두 번씩 임시정부 요원 안창호의 가르침을 받았다. 피천득은 훗날 안창호의 가르침 가운데 ‘절대적인 정직’을 으뜸으로 꼽으며 자기 문학의 뿌리이자 근본정신이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금아 피천득(1910~2007). 한국일보 자료사진
금아 피천득(1910~2007). 한국일보 자료사진

“다사다난한 근현대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사회단체는 물론 문인·학술단체에도 간여하지 않으셨죠. 너무 조용한 기질이 학문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요인이 아닌가 생각해요. 계파를 만들지 않으니 잡지에서 언급되지 적었던 거죠.” 구십 평생을 살았지만, 작품은 시와 수필이 각각 100편 안팎에 불과한 과작도 ‘저평가’의 요인으로 꼽힌다.

정 명예교수는 지금 이 시대에 금아의 서정시와 수필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정화의 기능”이라고 말했다. “돌아가시기 2년 전 쓰신 ‘시와 함께한 나의 문학인생’은 문학에 관한 최후진술이나 다름 없는 글이에요. 그 글에서 ‘높은 차원의 시는 동서를 막론하고 엇비슷하다. 모두가 순수한 동심과 고결한 정신, 그리고 맑은 서정을 가지고 있다’고 하시죠. 이런 시대일수록 시를 가까이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금아는 수필이 시의 연장이라 생각했고요. 인간성을 회복하는 공감의 능력, 상상력이 이 글들에 담겨 있지요.”

평전 출간과 함께 10주기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11일 오후 2시 서울 연건동 흥사단 2층 강당에서 문학 세미나가, 19일 오후 3시에는 예장동 문학의집 서울에서 ‘음악이 있는 문학마당’이 열려 고인을 추모한다. 기일인 25일에는 오후 4시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추모식이 열린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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