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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360˚] 선거철 되니 어김없이 날아온 ‘정치철새’들

입력
2017.05.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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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정당 의원 13명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바른정당 탈당 및 자유한국당(전 새누리당)복당, 홍준표 대선후보 지지 등을 선언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바른정당 의원 13명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바른정당 탈당 및 자유한국당(전 새누리당)복당, 홍준표 대선후보 지지 등을 선언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보수 단일화를 통한 정권 창출을 위해 바른정당을 떠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게 됐습니다.”

때이른 봄부터 겨울 철새가 돌아왔다. 지난 겨울 탄핵이란 기상이변에 ‘못 참겠다’며 새누리당을 떠났던 바른정당 의원 13명이 지난 2일 탈당을 결정하고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기상이변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제 둥지를 찾아 돌아가겠다는 마음이 애틋할 법도 하지만 떠난 집이 잘 되자, 민첩하게 돌아오는 철새들을 향한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이 세상에 ‘정치철새’ 가 서식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지만 대한민국에 찾아오는 철새들은 유난하다. 겨울이든 봄이든 선거철이면 등장하는 게 철새들의 공통적 특징이지만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철새들은 유독 여당ㆍ야당 상관없이 횡단하며 생존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런 생존 DNA가 생긴 것일까? 이들의 ‘조상새’ 들을 살펴봤다.

둥지 10번 옮겨 40년 정치인생 이어간 ‘시조새’

한영수, 1934년에 태어나 2009년 향년 75세로 사망한 그는 25세의 젊은 나이로 정치에 입문한 뒤 약 40년간 정계에 머물렀다. 국회의원 당선도 5차례(9ㆍ10ㆍ11ㆍ14ㆍ15)나 됐으니 가히 정치에 평생을 다 바친 인물이지만, 그 동안의 행로는 가히 오늘날 정치철새들의 시조새 급이다.

故 한영수 전 국회의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故 한영수 전 국회의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1960년 처음 정치에 입문할 때 무소속이었던 그는 70년대까지 야당인 민정당ㆍ신한당ㆍ신민당을 거친다. 여기까지는 ‘개명’에 의한 이동 수준이라 철새라 부르긴 어렵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한 전 의원은 전두환 정권이 집권한 제 5공화국 초기에 신군부가 만든 입법회의에 참가했고, 이후 ‘관제야당’이라 불렸던 민한당으로 들어간다. 그 후 민한당을 떠나 제3세계당을 창당하고 직접 총재가 됐으며, 제13대 총선때는 평민당에 입장한다. 이것은 끝이 아니다. 그 뒤 민주당 ▶ 새한국당 ▶ 통일국민당 ▶ 신민당 ▶ 자유민주연합(자민련)으로 이동에 이동을 거듭한 한 의원은 2000년 제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탈당하고, 이후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정몽준 당시 대선후보를 지지했다가 17대 총선에 다시 한번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한 전 의원은 생전에 “생각해보니 우리에겐 정치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며 자신의 정치역정에 회한이 많았다고 고백했지만, 그처럼 활발한 이동으로 정치생명을 연장한 시조새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이 잘 다져놓은 서울 여의도의 철새도래지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적 자유’가 주어지면서 더욱 비옥해지게 된다.

‘공직선거법 192조’ 철새방지백신에도 끄떡없는 철새들

1987년 민주화로 한국 정치에 봄볕이 들기 시작하면서 집권ㆍ당선가능성을 계산해 이동하는 철새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민주화 이후 두 번째로 치러진 1992년 제 14대 총선은 그 절정이었다. 당시 당선된 237명의 의원 중 무려 130명이 임기 중 당적을 바꾼 것이다. 야당에서 여당으로 옮긴 것이 20명, 여당에서 야당으로 간 사람도 24명이다. 여야를 세 차례 이상 오간 철새도 7명이나 된다.

역대급 철새 대이동에 정치권도 반성했다. 1995년 제14대 국회는 공직선거법 192조 4항이라는 ‘철새방지백신’을 만들었다. ‘비례대표국회ㆍ지방의회 의원이 소속 정당의 합당ㆍ해산 또는 제명 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ㆍ변경하거나 2개 이상의 당적을 가지고 있을 때는 퇴직된다’는 내용이다. 워낙 임기 중 탈당과 입당이 잦다 보니 이런 규정까지 나온 것이다.

2003년 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본회의가 끝난 후 민주당 송석찬의원이 통합신당 창당을 위한 노무현 후보 사퇴요구서를 공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자료사진
2003년 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본회의가 끝난 후 민주당 송석찬의원이 통합신당 창당을 위한 노무현 후보 사퇴요구서를 공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자료사진

하지만 백신의 효능을 비웃는 듯한 철새들이 있었으니, 바로 2000년 자신들을 ‘연어’라 칭한 새천년민주당의 철새들이다. 16대 총선에서 자민련은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에서 3석 모자란 17석을 획득했는데, 고 김대중 대통령과 새천년민주당은 공동여당을 구제해야 한다며 송석찬 전 의원을 비롯한 3명을 자민련으로 입당시켰다. 당시 송 의원이 “저는 연어의 심정으로 떠납니다”라며 당원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화제가 됐다. 의원들은 우여곡절 끝에 ‘둥지’로 돌아왔지만, 송 의원은 이후 19대 총선 낙천에 불복해 보수정당인 자유선진당으로 날아갔다.

이후 2004년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총선시민연대 등 시민단체가 잦은 당적 변경을 한 철새 정치인 45명을 공천에서 배제하라는 낙천운동을 펼치는 등 민간에서까지 지속적인 철새도래지 정화 노력이 이어졌다. 하지만 철새들의 활발한 활동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피닉제’ 부터 ‘김민새’ 까지…그들은 아직 건재하다

그 와중에 대선까지 출마하는 강한 생명력의 철새들도 있으니, 바로 이인제 자유한국당 중앙선대위원장과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이다.

이 전 의원은 1988년 정계에 입문한 뒤로 무려 14번이나 당적을 바꿨다. 그러면서도 6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생명을 이어와 ‘불사조’로 진화했으니, 사람들은 그에게 ‘피닉제(불사조+이인제)’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에게 결정적으로 ‘철새’ 낙인이 찍히게 된 건 1997년 대선이다. 당시 신한국당 소속이었던 이 전 의원은 당시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회창 전 의원에게 패했다. 그러자 탈당한 뒤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했다. 이 전 의원은 당시 김대중-이회창 후보에 이어 3위를 했는데, 이로 인해 당시 이 후보에게 갈 보수표가 그에게 분산됐다며 비난이 쏟아졌다. 대선 후 다시 김 전 대통령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했던 이 전 의원은 이후에도 여야를 오가며 당적을 바꾸다가 결국 현재 자유한국당 정착한 상태다. 하지만 철새라는 비판에도 이 전 의원은 건재하다. 제19대 대선 후보를 뽑는 자유한국당 경선에서도 당당히 기호 1번에 이름을 올렸으니 말이다.

이인제 자유한국당 중앙선대위원장이 지난 2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탄핵무효 집회에 참석,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인제 자유한국당 중앙선대위원장이 지난 2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탄핵무효 집회에 참석,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 전 의원은 “나하고 비교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라고 했지만, 정동영 의원과 이 전 의원은 꽤 비슷하다. 두 사람 다 대선에 출마하고 철새 꼬리표까지 달려봤으며, 여전히 정치인생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전 의원에 비교하면 정 의원의 꼬리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당적을 옮긴 것도 8번에 불과하고, 이중 대부분은 민주당 계열 정당들의 개명과 이합집산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철새라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은 2009년 재보선 선거 때의 결정 때문. 당시 2007년 대선 출마이후 의원직이 없던 그는 소속당인 민주당이 그를 공천하지 않자 무소속으로 전주 덕진에 출마한다. 당시 정 의원이 내세운 구호는 ‘어머니, 정동영입니다’. 지역구인 전주를 떠나 방황했던 아들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이때 당선된 정 의원은 1년 후 민주통합당으로 복귀한다.

김민석 새천년민주당 전 의원이 2007년 8월 당시 민주당 광주시당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민석 새천년민주당 전 의원이 2007년 8월 당시 민주당 광주시당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단 한번의 이동으로 철새 이미지가 제대로 박힌 의원들도 있다. 김민석 전 새천년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대학시절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김 의원은 1987년 대선 당시 야권 단일화를 촉구하며 15일간 단식 농성을 하는 등 민주당 내 알아주는 386세대 신예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2002년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탈당해 정몽준 후보가 있는 국민통합21로 당적을 옮겼다. 후보 단일화의 명분이었다.

하지만 정 후보가 대선 전날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자 바로 복당했고, 그런 그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그의 이름과 ‘철새’를 합한 ‘김민새’라는 별명이 본명보다 더 자주 검색됐을 정도다. ‘김대중 키드’라 불릴 정도로 텃새라 불렸던 그의 이동이 워낙 충격이었던 탓이다. 이후 김 전 의원은 도전하는 선거마다 낙선했지만 현재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상황본부장으로 임명되는 등 정치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위 사진)지난해 12월 21일 새누리당 김무성(맨 왼쪽에서 다섯 번째) 전 대표와 유승민(네 번째) 의원 등 비주류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회동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아래사진) 바른정당 비유승민계 의원들이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탈당을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 사진)지난해 12월 21일 새누리당 김무성(맨 왼쪽에서 다섯 번째) 전 대표와 유승민(네 번째) 의원 등 비주류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회동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아래사진) 바른정당 비유승민계 의원들이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탈당을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철새들은 말한다. 자신들의 항로는 ‘국민’을 위해 결정했다고. 이인제 중앙선대위원장은 “나는 국민의 큰 여론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또 저의 노선이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어려운 길을 많이 걸었다”며 자신의 행로를 설명했다. 정동영 의원 역시 “약자와 서민을 지킨다는 정확한 노선으로 날았다”고 말한다. 이번에 바른정당을 탈당한 의원들의 명분도 “보수의 대통합을 요구하는 국민적 여망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동안 여러 철새를 겪어본 국민들에게 어설픈 명분은 통하지 않는다. 김홍국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정치에서 실리를 추구하되, 가치를 버리지 않는 정치인들은 당을 옮겨도 철새라 불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치인이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자기 철학 없이 당장의 이권만을 지향하면 민심도 떠난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한국 정치의 철새들은 또 어떤 방향으로 날아갈까. 마침 대선 다음날인 5월 10일은 유엔환경계획(UNEP)이 철새 서식지 보전을 위해 지정한 ‘세계 철새의 날’이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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