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황당한 캐릭터·PPL 넣고
中 입맛에 맞게 스토리 변경 등
할리우드, 찰리우드 눈치 봐
영화 ‘콩: 스컬 아일랜드’에 출연한 중국 배우 징텐.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에 출연한 싱가포르계 중국 배우 친한.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전 엑소 멤버 크리스는 영화 ‘트리플 엑스 리턴즈’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 중국인 캐릭터가 필수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꼭 필요한 역할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대부분 극의 흐름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병풍’ 수준이라, 그 의도가 빤히 보인다는 게 문제다.

3월 국내 개봉한 영화 ‘콩: 스컬 아일랜드’에는 지질학자 샌 린 역으로 중국 배우 징텐이 출연한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관객은 많지 않다. 존재감을 보여주기엔 비중이 턱 없이 적은 탓이다. 같은 달 개봉한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에도 특수부대 요원 토구사 역에 싱가포르계 중국 배우 친한이 출연했지만, 원작 애니메이션에 비해 역할이 축소돼 원작 팬들의 원성만 샀다. 2월 개봉한 ‘트리플 엑스 리턴즈’에 등장한 전 엑소 멤버 크리스 또한 굳이 중국 배우를 캐스팅해야 할 이유가 없는 역할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중국 자본이 투입돼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이다. 할리우드 영화를 즐겨보는 관객이라면 엔딩크레딧에 투자자로 자주 등장하는 중국 기업의 이름 한두 개쯤은 기억할 정도로 중국 자본의 할리우드 공습은 이제 일상화됐다. 중국 배우의 ‘꽂아넣기’ 식 등장은 영화의 지분 일부를 중국이 점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종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다.

마술 사기단의 활약상을 그린 ‘나우 유 씨 미 2’는 마카오로 배경을 옮겨 중국 시장을 겨냥했다. 대만 톱스타 저우제룬이 출연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의 에인션트 원(왼쪽ㆍ틸다 스윈튼)은 원작에선 티베트족이었지만 켈트족으로 수정됐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제공
찰리우드, 세계 영화 시장의 공룡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영화 시장이다. 할리우드에 빗대 ‘찰리우드’(China와 Hollywood의 합성어)라고도 불린다. 수년 안에 미국을 밀어내고 1위 자리를 차지할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회계컨설팅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2012년에 27억달러(3조658억원) 규모였던 중국 영화 시장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거듭해 2015년에는 63억달러(7조1,536억원)를 기록했다. 2014년(42억달러ㆍ4조7,691억원)과 비교해 무려 49% 증가한 규모다. 지난해에는 66억달러(7조4,943억원)로 비약적인 성장을 보이진 않았지만, 전년도의 폭발적 성장세를 감안했을 때 시장 침체라 예단하기는 어렵다. 미국영화협회(MPAA)가 집계한 지난해 전세계 영화 시장 규모는 386억달러(43조8,303억원)로 전년도(384억달러ㆍ43조6,032억원)보다 1%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는데, 중국 영화 시장의 성장 둔화가 주요 이유로 분석됐다. 최근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제 중국이 없으면 할리우드가 존재할 수 없다”는 애덤 굿맨 전 파라마운트픽처스 프로덕션팀장의 발언을 소개했다.

미국 콘텐츠와 중국 자본의 결합은 이런 배경에서 이뤄져 왔다. 시장 규모가 성숙 단계에 접어든 할리우드는 13억 인구를 거느린 중국 시장에서 성장 동력을 찾았고, 영화를 레저의 하나로 인식하기 시작한 중국은 영화 시장에 대단위로 투자하며 자국 영화뿐 아니라 할리우드에도 눈독 들이고 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과 ‘분노의 질주: 더 세븐’(2015)에는 각각 알리바바픽처스와 차이나필름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나우 유 씨 미 2’(2016)는 마카오를 주요 배경지로 등장시키고 대만 톱스타 저우제룬(주걸륜)을 캐스팅했다. 다분히 중국 관객을 노린 설정이다. 중국 내 연간 해외 영화의 개봉 편수가 제한된 상황에서 중국 로케이션 촬영과 중국 배우 캐스팅은 이런 규제를 우회하는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제는 중국 입맛에 맞추느라 완성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중국 자본을 끌어들여 중국에서 상당 분량을 촬영한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2014)는 엉성해진 스토리 구조로 전세계 관객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극의 흐름을 깨뜨리는 간접광고(PPL) 남발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중국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내용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 좀비 영화 ‘월드워 Z’(2013)는 좀비 바이러스 발생지를 중국에서 러시아로 바꿨고, ‘닥터 스트레인지’(2016)는 원작의 티베트족 신비술사를 켈트족 출신으로 수정했다. ‘픽셀’(2015)은 만리장성 대신 인도 타지마할을 붕괴시켰다. 중국 당국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중국 정부의 티베트 탄압을 비판해온 배우 리처드 기어가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기 어려워졌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미중 합작 영화 ‘그레이트 월’
제작비 1700억원 쏟아부었지만
화이트 워싱·역사 왜곡 논란…
흥행 참패로 회의론까지 대두
배우 맷 데이먼이 출연한 영화 ‘그레이트 월’은 중국 완다그룹이 중견 제작사 레전더리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뒤 선보인 첫 작품이다.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그레이트 월’ 흥행 실패에 회의적 기류 퍼져

중국의 할리우드 공습은 단순한 자본금 투자를 넘어서 극장 인수와 공동 제작까지 영화 산업 전 영역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그 선두에 완다그룹이 있다. 완다그룹은 2012년 미국의 2위 극장 체인 AMC엔터테인먼트를 사들인 데 이어 지난해엔 미국 4위 극장 체인 카마이크를 인수해 세계 최대 극장 체인으로 등극했다. 영화 ‘퍼시픽 림’(2013)과 ‘쥬라기 월드’(2015) 등을 제작한 중견 영화사 레전더리엔터테인먼트도 품에 안았다. 지난 2월 개봉한 ‘그레이트 월’은 완다그룹이 레전더리엔터테인먼트를 내세워 유니버설픽처스와 합작한 첫 번째 영화다.

‘그레이트 월’은 송나라 시대 만리장성을 주무대로 전사 윌리엄(맷 데이먼)이 인류를 공격하는 정체불명의 괴수군단을 물리치는 활약상을 그렸다.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아 기대를 모았다. 미ㆍ중 합작 사상 최대인 제작비 1억5,000만달러(1,703억원)가 투입됐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흥행집계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미국 박스오피스 매출은 4,500만달러(510억원)에 그쳤다. 그나마 해외 시장에서 2억8,680만달러(3,256억원)를 벌어들여 총 수익 3억3,195만달러(3,769억원)를 기록했다. 중국에서만 해외 수익의 60% 가량인 1억7,096만달러(1,941억원)가 발생했지만 애초 기대에는 못 미쳤다. 최근 미국 연예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박스오피스 분석가의 말을 빌려 “세계 1위와 2위의 영화 시장이 합쳐졌지만 이는 의심의 여지 없이 실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레이트 월’의 참패로 할리우드 일각에선 미ㆍ중 합작을 재고해 봐야 한다는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스토리와 캐릭터, 제작 과정에서 양국 스태프의 불화 등이 그 이유로 거론된다. ‘그레이트 월’의 경우 ‘화이트 워싱’ 논란에 ‘역사 왜곡’ 논란까지 일었다. 미ㆍ중 관객을 모두 잡으려다 어느 쪽도 이해 못할 영화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현장에 통역사만 100여명이 고용됐지만 일부 스태프 사이에 충돌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위험 요소가 많은 합작 대신 완전한 중국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워너브라더스는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차이나미디어캐피탈과 합작사를 설립해 중국어 영화 12편을 제작할 예정이다. 할리우드의 한 분석가는 “중국 시장은 무시하기엔 너무나 중요하다”며 “누군가는 적절한 공식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연예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