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찍고 충북 거쳐 강원까지 하루에만 550여㎞를 강행군한 4일. 밤 10시쯤에야 강원 강릉시 숙소에 도착해 승합차에서 내린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풀린 넥타이에 주름진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대기하고 있던 한국당 강릉시도당 관계자 10여명과는 짧게 눈인사만 나눴다.
‘스트롱맨’이라 불리지만 홍 후보에게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고, 피곤한지 치통이 생겨 갑자기 이가 아프다.” 홍 후보는 엘리베이터 거울에 얼굴을 대고 입안을 들여다봤다. 유세 현장을 돌아다니며 헝클어진 머리도 두세 번 쓸어 넘겼다. 예순을 훌쩍 넘긴 그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17일 이후 머리가 눈에 띄게 허얘졌다. 염색해야 되지 않겠냐는 기자 얘기에 “됐다, 안 한다. 청와대에 들어가야 하지” 하며 웃었다. 밤 11시가 다 돼서야 5층 방에 도착한 홍 후보는 “내 이제 잔다”며 손 인사를 건네고 김대식 수행단장과 함께 방에 들어갔다.
평소 오후 11시에 잠들어 오전 5시쯤 일어나는 홍 후보는 유세 시작 뒤 취침이 늦어지면서 1시간가량 잠이 줄었다. 이튿날인 5일 오전 7시쯤 보고 받은 자료를 확인한 뒤 7시 34분쯤 페이스북에 ‘구글 트렌드’ 수치가 담긴 글을 올렸다. “홍은 상승세, 문은 하락세, 안은 폭락세”라는 게 요지다. 구글 트렌드는 포털 사이트 구글에서 일정 기간 동안 특정 단어가 얼마나 많이 검색됐는지 보여주는 서비스다. “내가 왜 구글 트렌드 올리는지 알아요?” 그는 대답을 듣지 않고 말했다. “보수 진영에 이긴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야. 박빙이다! 힘내라! 그 뜻이지.”
오전 8시. 숙소 1층 식당에 간 홍 후보는 자리에 앉자마자 안경부터 벗은 뒤 양손을 비벼 얼굴에 대고 간단한 마사지를 했다. ‘페북 유세’ 탓에 목만큼 피곤한 게 눈이다. 아침 메뉴는 갈비탕. 홍 후보는 숟가락 가득 밥을 떠 입에 넣은 뒤 맨손으로 갈비를 뜯었다. 평소 채식을 좋아하는 홍 후보지만 유세가 막바지에 이른 만큼 단백질로 체력을 보충했다. 식사를 마치고는 니코틴이 든 ‘금연껌’을 꺼냈다. “5년 전에 금연을 했지만 금연껌은 아직 못 끊었다”는 홍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서민을 위해 담뱃값을 2,500원으로 되돌리는 공약을 내놨다.
오전 9시쯤 전날 옷차림 그대로 차에 탄 홍 후보는 강릉 주문진 수산시장으로 출발했다. 핑크색 와이셔츠에 빨간 무늬 넥타이 차림이 화사하지만 바지 오금은 쪼글쪼글했다. 유세마다 이마가 땅에 닿도록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올리면서 생긴 주름이다. 홍 후보는 1994년 검사 시절 강원 용평 스키장에서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돼 수술한 이후 지금까지 무릎이 불편하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절을 마다치 않는다. “그래도 나한테는 국민이 상왕이니까.” 그의 설명이다.
홍 후보는 유세에서 자주 음원을 틀어놓고 노래를 부른다. 이유를 묻자 그는 “노래하는 게 즐겁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래하는 대통령 후보는 내가 해방 이후 처음”이라고도 했다. 홍 후보는 “아버지가 무학이지만 판소리를 했다”며 “94년에 음반 회사에서 검사 가수 홍준표라는 제목으로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는데 집사람이 반대해 못했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인생 롤모델로 어머니를 꼽는 홍 후보는 가족애가 각별했다. 하지만 유세가 바빠 둘째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결혼식에 못 가 미안하고 짠하다”는 그는 “유세 중간중간 영상 통화를 하지만 신혼여행이 끝나면 아들은 바로 미국 애리조나 비행학교로 간다”며 차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홍 후보는 이날 오전에만 강원 강릉ㆍ속초ㆍ인제를 돌며 보수표 결집을 호소했다. 속초중앙시장을 방문한 홍 후보는 “친북좌파 정권을 선택할 것이냐,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는 보수우파 정권을 선택할 것이냐”며 “이번 선거는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선거”라고 강조했다. 이후 수도권 유세를 마친 홍 후보는 3일 시작된 2박 3일 유세 일정을 마치고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자택으로 복귀했다.
강릉ㆍ속초ㆍ서울=글ㆍ사진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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