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표’는 유권자의 의사를 표현하는 도구지만, 후보자에게 ‘표’는 잡아야 할 목표이자 유권자 그 자체다. “젊은 표를 잡기 위한 공약을 내놓다”나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해 움직이는 표가 많다”는 표현에서 그런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도구’를 나타내는 말로 ‘그 도구를 지닌 사람’을 비유하는 용법은 특정 상황에서 ‘안경 쓴 사람’을 ‘안경’으로, ‘운전자’를 ‘차량 이름’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런 비유적 의미는 대부분 국어사전의 뜻풀이에서 배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표현이 일반화되어 새로운 표현을 파생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표’에서 파생된 ‘표심’이 널리 쓰이자,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이를 “유권자의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했다. 이미 국어사전에서도 ‘표’를 ‘유권자’로 읽고 있는 것이다.
‘촛불’도 그런 변화를 겪고 있는 말이다. ‘촛불집회’란 말에서 ‘촛불’은 ‘촛불을 든 사람’을 비유하는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촛불집회’란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촛불’은 ‘촛불을 든 사람’보다 ‘초에 켠 불’이라는 도구의 의미로 먼저 읽혔다. ‘촛불’에서 ‘집회에 참가한 사람’이란 뜻을 먼저 떠올리게 된 것은 ‘촛불집회’와 ‘촛불시위’가 거듭되면서부터다. ‘촛불집회’의 신기원을 이룬 2016년엔 ‘촛불민심’ ‘촛불시민’ ‘촛불혁명’이란 말이 등장하였다. 새로운 표현이 등장하면서 ‘촛불’에는 ‘어떤 의지를 공유하는 사람 또는 그 의지’란 뜻까지 덧붙었다. 그런 뜻을 담은 ‘촛불’은 이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오늘도 켜졌다” “촛불들의 염원” "1000만 촛불의 뜻을 받들겠다" 등으로도 쓰인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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