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기업과 하도급 담합 분쟁 등
1년 넘도록 결론 안 내리고 미뤄
#2.
中企는 받아야 할 돈 못받고
대기업 민사 제기에 소송비까지
경영 역량 훼손돼 존폐 위기 몰려
“무혐의라도 좋으니 빠른 결론을”
#3.
사건조사 기한 엄격 규정 등
지연 막을 제도적 장치 마련돼야
원청 대기업으로부터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중소 건설업체의 제소에, 담당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늑장 조사’로 이중의 고통을 주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가맹점주와 가맹본부 간 이른바 ‘갑-을 분쟁’에서 공정위의 늑장 처리는 고스란히 ‘을(乙)’의 고통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3일 공정위와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작년 1월 접수한 GS건설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행위 건’에 대한 결론을 벌써 1년 5개월째 내리지 않고 있다.
이는 지방의 수문 제작업체 K사가 2011~2015년 사이 진행된 영산강 하구둑 수문제작 및 설치공사에서 원도급사인 GS건설로부터 설계변경에 따른 추가 공사비(65억원)를 받지 못했다고 신고한 사건이다. 당초 K사는 2015년 8월 공정위 산하 공정거래조정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해 그 해 11월 “GS건설이 65억원을 지급하라”는 조정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GS건설이 이에 불복하면서 사건은 공정위로 넘어갔고, 지금껏 처리가 미뤄지고 있다. 공정위 산하기관이 한차례 결론을 내린 사건에 대해 공정위가 차일피일 판단을 미루고 있는 셈이다.
처리가 지연되는 이유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단순 시공이 아닌 턴키방식(설계ㆍ시공 일괄수주) 계약이라 추가 공사비 책임 소재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다”며 “양측간 민사소송에서 나온 증언도 따져봐야 했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화해가 주 업무인 조정원과 달리, 공정위는 법 위반을 특정하는 곳이라 검토할 게 전혀 다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정위가 시간을 끄는 사이, 대기업은 자본력을 이용해 외곽에서 또 다른 지연전술을 펼친다. 이 사건에서도 GS건설은 공정위에 사건이 이첩되자 서울중앙지법에 공사대금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채무부존재 확인’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공정위에 “소송이 끝날 때까지 판단을 미뤄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의 늑장 처리와 대형 건설사의 지연작전 와중에 중소업체인 K사는 막심한 손해를 입고 있다고 읍소한다. K사 관계자는 “받아야 할 돈 수십억원을 장기간 못 받는 것도 엄청난 타격인데, 공정위와 법원에 이중으로 변호사를 써야 해서 벌써 수천만원을 지출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남근 참여연대 소속 변호사는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위라면 시장점유율, 시장영향 등 별도의 경제적 분석까지 필요해 사건처리가 까다롭지만 통상 하도급법 위반 건은 ‘행위 자체’만 조사하면 돼 1년 5개월이나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늑장 처리로 인한 부작용은 앞선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2012년 참여연대가 공정위에 ‘매출액 허위ㆍ과장 정보 제공’ 등을 이유로 편의점 가맹본부인 BGF리테일(CU)ㆍ코리아세븐(세븐일레븐)을 신고하자, 공정위는 3년간의 ‘장기’ 심의 끝에 2015년 “법 위반여부 판단이 어렵다”며 무혐의 처리했다. 미스터피자 가맹점주들이 ‘광고비 일방 전가’ 등의 이유로 가맹본부를 신고한 사건도 지금까지 2년이 넘도록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맹점주들은 심지어 “무혐의라도 좋으니 제발 결론만 빨리 내달라”고 사정을 하기도 했다. 이의영 군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보통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거래 단절을 각오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공정위 문을 두드린다”며 “사건처리가 늦어지면 별도 법무조직이 없는 중소기업은 경영 역량이 훼손돼 존폐 위기에 내몰릴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공정위의 조사 지연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동우 변호사는 “흔히 갑을간 분쟁의 처리 경로는 ‘중소기업의 신고→대기업의 민사소송 제기→처리 지연→중소기업 경영타격→자진 신고철회 혹은 합의’로 흘러 간다”며 “법으로 사건처리 기한을 엄격히 규정하고 공정위가 무혐의 등 결론을 내리면 사후에 그 적정성도 심사할 독립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사 인력을 늘릴 필요성도 언급된다. 한 전직 공정위 간부는 “공정위 인력을 늘리려 할 때마다 재계의 각종 반대 논리로 좌절되는 경우가 많다”며 “차기 정부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라도 공정위 조직 확대를 검토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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