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로 넘기라는 여론 어기고 강행
정치권력은 편협한 신념에 매몰되기 쉬워
국민동의 얻는 절차적 정당성 확보 중요
트럼프의 사드 비용 한국 부담 발언으로 사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한반도 사드 배치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은 꼭 3년 전 미국 쪽에서였다. 한 달 뒤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이 “구매 계획은 없으나 미국이 주한미군에 배치하는 것은 괜찮다”는 발언을 한다. 이후 국내에서는 유용성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불거졌고 중국ㆍ러시아의 견제 발언까지 나오며 민감한 외교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2년 가까이 한미 당국은 결정된 것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다 갑자기 2016년 2월 사드 배치 공식 협의 시작을 발표했다.
당연히 국내 갈등이나 중국 등의 외교적 압박은 더 거세졌지만 사드 논의는 일사천리였다. 한 달 뒤 한미는 사드 문제 논의 공동실무단 구성ㆍ운영 약정을 체결했고, 7월에 경북 성주가 배치 지역으로 결정ㆍ발표되었다. 배치 장소를 성주 내 롯데 골프장으로 바꿔 지난 2월 롯데와 땅 교환 계약까지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사드 발사대 2기가 한국에 도착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배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지적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미 당국은 지난달 26일 새벽에 발사대와 요격 미사일 등 핵심 장비를 기습 배치했다.
지금까지 사드 찬반 논란은 주로 필요성을 두고 벌어진 것이었다. 사드는 중국을 감시할 수 있는 체제이고 미국의 MD에 편입되므로 외교적으로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다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효과도 불분명하지 않느냐는 것이 주요한 반대 논리였다. 이에 대해 찬성파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비할 방어용 무기가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유를 든다. 사드는 무기체계여서 정보 자체가 비공개된 부분이 많아 찬반 주장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이 상태로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배치 결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절차적 정당성 확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사드 배치는 탄핵 정국에다 새 정부 출범을 눈 앞에 둔 사실상 권력 공백 상태에서 다음 정권에 결정권을 주자는 여론이 비등하는데도 국민의 동의를 구하기는커녕 충분한 설명도 없이 더욱 속도를 내며 진행됐다. 특히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성주 주민들로서는 날강도라도 당한 기분이 든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사드 배치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차기 정권에 큰 부담이 되는 ‘뜨거운 감자’이기는 하다. 그래서 과정이야 어찌 되었던 이대로 일단락되어 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정치권력은 이념의 여하를 막론하고 자신의 편협한 신념을 ‘애국’이나 ‘안보’라는 이름으로, 때로 ‘정의’까지 팔아 밀어붙이려 들기 마련이다. 국회 탄핵 후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단죄를 받은 박근혜와 그 조력자들을 떠올려 보라.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권력이 늘 명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 사드 배치는 그런 절차를 정면으로 무시한 나쁜 사례다.
우리가 한일 위안부 합의를 재협상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미국 새 정부의 사드 비용 재협상 주장을 거부할 수는 없다. 사드가 정말 필요하다는 국민적 합의만 있다면 10억 달러가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내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다만 그 답을 국민에게서 구하는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국민투표는 아니더라도 국회 논의는 필수다. 애초 정부가 가감 없는 대국민 설명과 투명한 의사결정 공개 등으로 절차를 갖춰 납득할 사드 배치를 진행했더라면 애써 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리고 성주 지역 주민들에게서 이해를 구하는 시간과 노력도 더 들여야 한다. 이런 국민적인 여론 수렴 과정은 결국 사드 비용이나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두고 앞으로 벌어질 대미 협상력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그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사드 배치 작업을 이 상태에서 멈추는 것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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