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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칼럼] 광화문 광장과 김일성 광장

입력
2017.05.0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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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의 이명훈이 절망한 남북 현실

‘촛불 민심’과 미사일 선전장으로 분화

‘민주기지론’ 거꾸로 북에 들이밀 때다

작가 최인훈은 인간이라면 밀실에서 나와 광장으로 향하는 길을 저마다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들의 광장이라고 하였다. 그의 화자이기도 한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이런 관점에서 해방 이후 남한의 정치광장은 쓰레기들로 가득찬 공간이라고 비판을 가한다. 정치꾼들은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며, 문화적으로도 헛소리만 가득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대안으로 선택한 북한 역시 정작 인민들은 주체적 혁명 경험을 갖지 못한 채, 모든 것이 위대한 지도자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라고 절망한다. 이미 위대한 지도자들이 모든 진리를 발언하여 보통 인민들은 더 이상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없는 곳이 북한이라는 것이다.

결국 휴전 직후 중립국 행을 택한 이명준이 다시 2017년 한반도를 찾게 된다면 그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2016년과 17년, 한국의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혔다. 그리고 헌법적 절차에 벗어나 정치를 파행으로 치닫게 한 대통령의 퇴진을 줄기차게 요구하였고, 결국 입법부의 표결과 헌법재판소의 판결 과정을 거쳐 대통령을 탄핵하는 정치 변화를 이루어내었다. 2017년의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평화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명할 수 있게 된 기점은 실은 30년 전인 1987년, 같은 광장에 모였던 학생과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이다. 그 시기 광장에서 표출된 민의를 반영한 현행 헌법이 결국 2017년 광화문 광장에서의 정치 변혁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제 한국 정치의 광장은 이명준이 그토록 절망하였던 쓰레기나 오물 덩어리가 더 이상 아니다. 1987년과 2017년을 거치면서, 서울의 광화문 광장은 밀실에서 소곤대던 인간들의 정치적 의사가 울려 퍼질 수 있는 대중의 밀실이 되었다.

한편 광화문 광장이 쓰레기더미에서 민주 정치의 성지로 변화하던 시기에, 평양의 김일성 광장은 어떠했는가.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찰스 암스트롱 교수에 의하면 김일성 광장은 한국전쟁 직후 폐허화된 평양 시가지를 구 소련과 동독 출신 도시계획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 개조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유럽의 시가지를 방불케 하는 현대적 외관과 달리 김일성 광장은 여전히 50년대 이명준이 절망하던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민주주의 혁명’을 직접 체험하지 못한 대다수 피동적 군중이 ‘위대한 지도자’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군사 퍼레이드와 각종 이벤트에 여전히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평양의 김일성 광장은 다수 인민의 주체적 의사가 표명되는 기능을 상실하였고, 다만 유일한 ‘위대한 지도자’ 가문의 권위를 내외에 보이기 위한 각종 미사일과 위력적 무기들의 데뷔 무대로만 기능하고 있다.

한때 북한은 민주기지론에 입각해 대남 정책을 주도하려 하였다. 즉 북한을 먼저 민주주의의 성지로 완성하고, 그 연후에 남한 정당 및 시민들과 연대해 한국의 독재정권을 민주화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촛불이 넘실대는 광화문 광장을 미사일 퍼레이드에 활용되는 김일성 광장과 비교해 보면, 어느 사회가 보다 민주기지에 근접해 있는가는 자명해진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대북 정책은 오히려 우리가 북한의 민주화를 내외적으로 촉구하는 방향이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클라우제비츠가 적국 나폴레옹의 전략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전쟁론>을 집필하였듯이, 상대의 전략을 역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들의 전유물 같았던 민주기지론을 우리의 국가전략으로 활용하여 대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김일성 광장에 더 이상 미사일과 전차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평화를 바라는 북한 주민들의 촛불이 타오르게 해야 한다. 북한의 민주화는 국제사회가 공통적으로 바라는 한반도 비핵화의 과제도 풀어내는 첩경이 될 수 있다. 촛불혁명의 결실에 의해 장미 대선에 나서는 후보들이 정파를 막론하고 이런 대북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 겨울 밤의 광화문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를 외쳤던 시민들의 염원에도 부합하는 길이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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