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마지막날 데뷔 첫 승을 올린 LG 김대현(20)은 지난해 기대를 받고 입단한 1차 지명 출신이다. 김대현은 올 시즌 첫 4경기를 불펜으로 나가 8⅔이닝 동안 6피안타(1피홈런) 1볼넷 4탈삼진 1실점 평균자책점 1.04로 호투했고, 지난달 19일 대전 한화전에서 데뷔 첫 선발 등판해 기대 이상의 호투로 양상문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수원 kt전에서 5⅓이닝 3실점하며 데뷔 첫 승을 선발승으로 장식했다. LG에서 모처럼 보는 1차 지명 선수의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1990년대만 해도 LG는 같은 서울 연고인 OB와의 ‘주사위 던지기’에서 압승을 거두며 유망주를 대거 수확했다. 91년 송구홍(OB 황일권)을 시작으로 92년 임선동(OB 손경수), 93년 이상훈(OB 추성건), 94년 유지현(OB 류택현), 95년 심재학(OB 송재용), 97년 이병규(OB 이경필)까지 모조리 이겼고, 98년 처음으로 OB에 주사위 던지기에서 지면서 김동주(은퇴)를 내 줬지만, 조인성(한화)을 데려 갔다.
그러나 LG의 성공 시대는 여기까지. 공교롭게도 주사위 던지기가 사라지면서 스카우트는 번번이 실패했다. LG에서 꽃을 피우지 못했던 박경수(ktㆍ2003년)와 박병호(미네소타ㆍ2005년)는 그렇다 치더라도 김광희(은퇴ㆍ2002년), 김유선(은퇴ㆍ2007년) 등 부상이나 기량 미달로 등판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유니폼을 벗은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2010년 지역 연고 1차 지명이 폐지됐다가 부활한 2013년 이후에도 LG는 임지섭(2014년)의 조기 육성에 실패했다. 2008년 1차 지명 선수인 이형종도 올 시즌 뒤늦게 빛을 보기 시작했지만 입단 후 10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투수로 지명됐다가 지금은 타자로 전향했기 때문에 의미는 다소 퇴색됐다. 2000년대 하위권에 머물며 신인 발굴에 유리한 조건이었던 LG의 반복된 실패는 단순한 불운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1차 지명 선수는 그 해 연고 지역의 최고 유망주로 잠재력은 이미 검증된 선수들이지만 조급했던 LG나 지도자들은 몸에 맞지 않는 자세 교정이나 주입식 지도로 장점마저 잃게 해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한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입단하자마자 이상훈(LG 피칭아카데미 원장) 코치의 손에 맡겨진 김대현은 “이상훈 코치님이 언제 어디서든 무너지지 않는 정신력을 강조하셨고, 힘들 때마다 오늘만 야구할 게 아니고 내일도 있다고 격려해 주셨다”고 돌아봤다. 첫 승 직전 경기였던 지난달 25일 잠실 SK전에서 4이닝 7실점으로 부진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털고 다시 씩씩하게 던졌다. 이 코치는 김대현의 단점을 찾기보다 장점인 묵직한 구위를 더 살리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그라운드 안팎에서 강인하고 대범한 마음가짐을 꾸준히 주문했고, 그러면서 곁들여지는 기술적인 지도는 김대현에게 빠르게 흡수됐다. 관중이 꽉 들어찬 야구장 마운드에 오르면 정신 없을 2년차지만 이 코치에게 트레이닝을 받은 김대현은 긴장한 내색 없이 위기의 순간에도 볼을 남발하지 않고 자기 공을 던질 줄 안다. 양상문 감독도 그 점을 높이 사 꾸준히 기회를 주고 있다. 현역 시절 타자를 압도했던 이 코치의 특급 멘탈과 자기 관리 비법을 전수 받은 김대현은 LG의 1차 지명 잔혹사를 끊을 적임자로 떠오르고 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