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이 역대 두 번째 최대 실적을 거두며 6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특히 반도체 수출이 역대 2위로 호황을 확인했고, 선박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재기했다. 그러나 빠른 수출 회복세만큼 일자리가 늘지 않아 ‘고용 없는 성장’이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업자수는 116만7,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 늘었고, 대졸실업자도 54만7,000명으로 9.2%나 늘어 역대 최고치였다. 수출호황에도 고용절벽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4월 통관 기준 잠정 수출액이 510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2% 늘었다고 1일 밝혔다. 2014년 10월 516억달러 이후 역대 2위다. 5년 4개월 만에 6개월 연속 증가했고, 5년 7개월 만에 4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하루 평균 수출액도 24.2% 올라 22억7,000만달러로 집계됐다. 2014년 6월 이후 최대 실적이다.
품목별로는 13대 수출 주력품목 가운데 9개가 늘었다. 특히 한동안 침체됐던 선박 수출이 사상 최대 실적인 71억3,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반도체(71억4,000만달러)와 일반기계(42억9,000만달러)는 각각 역대 2위와 4위의 수출 실적을 냈다. 반도체와 석유화학은 7개월, 평판 디스플레이와 석유제품은 6개월, 자동차는 3개월 연속 수출이 증가했다.
나라별로는 중동을 제외한 주요 지역에서 수출이 모두 늘었다. 유럽연합(EU) 수출은 64억3,000만달러로 사상 최대를, 중국은 4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10.2%)을 기록했다. 미국 수출은 2개월 만에 증가로 돌아섰다. 산업부 관계자는 “세계 경제와 교역이 회복세를 보이고, 수출 구조 혁신 노력의 성과가 점차 가시화하면서 5월 수출도 현재의 회복 기조를 지속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낙관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최근의 연이은 수출 증가세는 단가 상승이 뒷받침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6개월 연속 수출액이 증가하는 동안 수출단가는 계속 오름세를 보였고, 지난달엔 전년 동월보다 35.2%나 뛰었다. 특히 반도체와 자동차, 석유제품, 석유화학, 철강 등 최근 수출액 증가를 견인한 품목들이 단가 상승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분석이다. 반면 13대 품목 전체 수출물량은 작년 4사분기 -1.2%를 기록한 뒤 올 들어 증가로 돌아섰지만, 오름세가 주춤하더니 4월엔 8.2%로 확 줄며 감소로 다시 전환했다.
금액 중심의 수출 성장은 기업엔 수익을 가져다 주지만, 일자리 창출을 견인하진 못한다. 현재 우리 주력산업 대부분은 생산 물량이 늘어야 고용을 확대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수출 성장이 대기업 중심의 주력업종만 혜택을 누리는 ‘그들만의 리그’가 돼버린 이유다. 고부가가치선과 해양플랜트가 가져다 준 선박 분야의 최대 실적 역시 물량을 인도한 뒤 받기로 예정돼 있던 금액이 반영된 거라 수출 회복이나 고용 창출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수출 주력품목이 포함된 제조업 취업자 수가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감소세를 이어왔다.
결국 생산량은 제자리인데 가격 변동으로 수출실적이 오르는 건 명목상 회복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철 산업연구원 연구부장은 “4차 산업혁명이 현실화하면 수출실적 개선이 생산현장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제품 혁신이나 연구개발 분야의 고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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