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제주 최고의 아름다움을 영주십경(瀛洲十景)이라 표현한다. 영주(瀛洲)는 제주도의 옛 명칭으로, 영주십경은 제주의 아름다움 10선이다. 그 중에 영구춘화(瀛邱春花)는 제주시 방선문(訪仙門)에 핀 봄꽃 절경을 표현하는 말이다. 방선문은 한천(漢川) 상류로, 계곡 양쪽 기슭에 진달래와 철쭉, 참꽃나무 등이 만발해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신선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로 시인과 묵객들이 즐겨 찾는 유람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라산의 봄은 분홍이다. 4월 하순 털진달래가 피기 시작해 5월초 절정을 이루고 산철쭉은 5월말에서 6월초가 절정이다. 특히 해발 1,400m 이상의 아고산대 지역은 넓은 산자락에 키 큰 나무가 거의 없기 때문에 털진달래와 산철쭉의 연분홍 꽃송이가 지표면을 뒤덮으며 장관을 연출한다.
대표적인 곳이 방애오름, 움텅밭, 탑궤를 비롯한 선작지왓, 만세동산 일대다. 그 중에서도 선작지왓은 넓은 초원지대가 온갖 꽃들로 뒤덮여 산상화원을 방불케 하고, 방애오름의 경우는 나무 한 그루 없는 오름 전체가 온통 분홍으로 덮은 형상이다. 만세동산 또한 백록담 화구벽과 어우러지며 또 다른 멋을 연출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국내에서 고산초원을 볼 수 있는 곳은 한라산밖에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한라산에서 자라는 진달래과 식물로는 털진달래와 산철쭉, 참꽃나무가 있다. 5월의 한라산을 대표하는 진달래와 철쭉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에 앞서 정확한 이름부터 알 필요가 있다. 현재 한라산에서 자라는 연분홍 꽃 나무는 진달래와 철쭉이 아니라 털진달래와 산철쭉이라고 해야 맞다. 그리고 과거 영산홍이라 부르던 것은 참꽃나무라 해야 된다.
진달래와 철쭉의 가장 큰 차이점은 꽃피는 시기. 진달래가 먼저 피고 철쭉은 진달래가 지고 난 후 꽃을 피운다. 꽃과 잎을 보고도 알 수가 있는데 진달래는 꽃이 진 후 잎이 나오는데 반해 철쭉은 꽃과 잎이 비슷한 시기에 피거나 잎이 먼저 나온다. 털진달래는 진달래에 비해 고산지역에 자라며 어린 가지, 잎 앞면, 잎 가장자리, 잎자루 등에 털이 늦게까지 남아 있고, 꽃은 더욱 늦게 핀다. 산철쭉은 계곡이나 높은 산의 능선에서 자라는데 잎이 꽃보다 먼저 난다. 잎은 긴 타원형이며 털이 많고 점액 성분이 있어 만지면 끈적거린다. 잎 뒷면의 맥 위에는 갈색 털이 빽빽하게 난다. 꽃 색은 철쭉에 비해 진한 특징이 있다. 제주도의 꽃으로 지정된 참꽃나무는 낙엽성으로 잎이 작고 수술이 5개인 것이 차이점이다.
한라산은 우리나라 전체 식물 종의 절반 가량이 서식하는 곳으로, 종 다양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라산을 표현할 때 ‘식물의 보고’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학계에서 주목하는 종들이 고산식물이다. 빙하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식물들이 아직까지 남아 그 생명력을 이어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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