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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통령 없으니 경제가 살아나네

입력
2017.05.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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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다 찼는데요.”

최근 부 회식 차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식당 주인이 한 말이다. 할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연락을 해 봤지만 그 곳 역시 자리가 없었다. 주말에 간 마트도 북적이긴 마찬가지였다. 황금 연휴 덕에 공항도 발 디딜 틈이 없다. 경기가 풀리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가장 먼저 청신호를 보낸 곳은 수출이다. 지난해 11월부터 플러스로 돌아선 수출은 최근 3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투자도 늘었다. 그 동안 다른 지표들의 개선에도 한겨울이었던 소비까지 점차 기운을 차리는 모양새다. 이에 가장 보수적인 경제 기관인 한국은행마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상향 조정했다. 권위에 손상이 가는 일인데도 지난 1월 발표한 전망치(2.5%)를 3개월 만에 바꾼 것은 그 만큼 회복 신호가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바닥을 쳤고, 앞으로 더 나빠지진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증시엔 이미 불이 붙었다. 정유년을 2,000대에서 출발한 코스피는 어느새 2,200선도 돌파했다. 2011년 5월2일 기록한 역대 최고치(2,228.96)도 갱신할 기세다. 삼성전자는 223만1,000원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가 행진이다. 올해는 떨어질 것이라던 집값도 슬금슬금 오르더니 최근에는 부동산 시장에도 낙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경제에 봄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전 세계 주요국 경기가 좋아지고 있는 게 가장 큰 배경으로 꼽힌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글로벌 경기가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미국과 중국, 일본, 독일 시장이 모두 회복세를 보이면서 수출이 호조다. 이에 기업들 실적이 개선되며 주가가 오르고 이런 분위기가 소비 심리까지 자극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조심스럽다. 단순한 지표의 개선이 아니라 실질 소득과 일자리 증대가 이어져야 경제 선순환의 고리는 완성된다.

흥미로운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뗀 뒤부터 경기 회복 신호가 더 분명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정치가 인위적인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등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민간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것이란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각에선 국정 최고 통수권자의 공백이 생기면 국가 경제가 혼란에 빠지고 무기력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오히려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최순실 등 국정 농단 세력이 더 이상 기업들을 괴롭히지 않은 것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경제 사령탑인 부총리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무리수를 쓰지 않은 것도 점수를 받을 만하다. 전임자가 자신의 이름을 단 ‘초이노믹스’로 결국 집값만 띄워 적잖은 부작용을 일으킨 것과 대조된다. 불쾌해진 박 전 대통령이 ‘초이노믹스’를 ‘근혜노믹스’로 바꾸란 지시를 내리고 지나치게 깨알같이 간섭하며 경제가 더 망가진 측면도 크다.

일주일 후면 대통령 선거다. 후보들은 저 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없을 때 경제가 더 좋아진 역설을 후보들은 유념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다. 시장의 룰이 잘 지켜지도록 감시하고, 시장이 실패했을 때는 직접 나서 마중물 역할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를 정치에서 놔 줘야 할 때다. 특히 대통령의 이름이나 정권 차원의 정체성을 ‘○○노믹스’로 새겨 넣으려는 시도는 더 이상 하지 말았으면 한다. 5년도 안 되는 권력이 수백년 국가의 대계를 흔드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가만 놔 두면 바랄 게 없겠다”는 경제계의 넋두리를 당선자가 새겨 듣길 기대한다. 취임을 했는데 대통령이 없을 때보다 경제가 더 나빠져선 곤란하지 않겠는가. 박일근 경제부장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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