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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멀고도 험한 ‘법인세 15%’ 가는 길

입력
2017.05.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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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ㆍ독일보다 낮은 세율

대규모 재정적자 우려에

투자 확대 이어질지 의문

의회 통과 가능성도 불투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법인세 대폭 인하(최고세율 35→15%)를 두고 현실성이 낮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덜 거두는 방식으로 투자와 고용을 늘려 경제를 살리겠다는 취지지만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원ㆍ달러 환율이나 대미 수출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한국으로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안이다.

의문1: 15%는 블러핑?

일단 명목세율을 35%에서 15%로 단숨에 내린다는 데에 부정적 시각이 적잖다. 현재 미국의 법인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15%까지 내릴 경우 일본(23.4%)과 한국(22%)은 물론 영국(19%), 독일(15.825%)보다도 낮은 세율이 된다.

15%가 실현된다면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주고받는 거래’에 능한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과 절충을 염두에 두고 의회에 일부러 지나치게 낮은 숫자를 던졌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크레디트 스위스의 분석가 제임스 스위니는 “실현 불가능하지만 초반 우세를 확보하기 위해 던진 첫 수(gambit)”라고 풀이했다. 첫 목표를 최대한 낮게 잡아 가능하면 많은 폭의 세율 인하를 끌어내겠다는 일종의 ‘블러핑(패가 좋지 않은데도 상대를 기만하기 위해 오히려 더 강한 베팅을 하는 것) 전략’인 셈이다.

의문2: 재정적자는?

15%가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법인세 감세가 이뤄질 경우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에 큰 구멍일 뚫릴 수 있다는 점도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세제분야 싱크탱크인 미국 조세정책센터는 이번 감세로 줄어드는 세수를 10년간 2조4,000억달러(약 2,719조원)로 예상했다. 지난해 미국 재정적자가 5,870억달러(665조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법인세 감세로 연방정부 적자는 연간 9,000억달러(1,020조원)에 이를 수도 있다. 물론 법인세 감세로 경제가 활성화돼 세수가 늘면 적자 폭은 줄어들 수도 있다.

의문3: 감세효과는?

문제는 세금을 줄여 준 만큼 경제 성장률이 더 늘어날 지 장담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법인세 감소로 인한 세수 구멍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0.9%포인트 높아져야 한다. 그러나 법인세 감세에 따른 효과는 기껏해야 그 절반 정도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재정 건전성에 상처를 입혀 가면서 기업에게만 좋은 일을 시켜 주는 셈이다. 특히 이번 법인세 감세로 트럼프 일가가 소유한 기업 역시 상당한 감세 혜택을 얻는다는 점에서 ‘셀프 감세’라는 비판도 나온다.

의문4: 투자 늘까?

세금을 줄여주는 이유는 덜 낸 세금을 더 투자해서 고용을 늘리라는 취지다. 그러나 기업들 입장에서 인건비가 높은 미국에 새로 공장을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여유자금이 생기면 투자 대신 배당을 늘릴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과거 사례를 봐도 감세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실제로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감세 정책을 썼지만 세수가 1달러 줄어드는 만큼 새로 생긴 수요가 0.75달러에 불과했다는 연구도 있다. 법인세 감세가 투자로 이어지지 않았던 한국의 사례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내리는 기업 감세를 단행하며 2009~2012년 기업들이 덜 낸 법인세 규모는 26조7,0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기업 투자 규모를 보여주는 총고정자본형성(민간부문)은 23조1,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직전 4년(2005년~2008년) 투자증가 규모인 33조5,000억원보다도 10조원 이상 적은 규모였다. 

의문5: 통과될까?

트럼프 행정부의 급진적 감세가 의회를 통과할지도 불투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이 상원(100석 중 52석)과 하원(435석 중 237석)에서 다수당이긴 하지만 상원에서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의석(60석)에는 미치지 못한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세제개편안이 ‘부자감세’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일종의 급행절차인 ‘조정 절차’를 통하면 51명의 찬성만으로도 통과가 가능하지만, 공화당 안에서도 정부부채 급증을 반대하는 일부 의원들이 있어 ‘반란표’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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