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에 다니는 문모(31)씨는 지난달 28일 퇴근하자마자 남태평양 휴양지 팔라우로 9박10일 여행을 떠났다. 근로자의날(1일) 석가탄신일(3일) 어린이날(5일) 대통령선거일(9일) 징검다리 휴일에 낀 근무일(사흘)을 연차로 돌리면서 주말 포함, 총 11일의 ‘황금연휴’를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씨는 “5년 전 취업을 한 뒤로 정기휴가 때도 이렇게 긴 여행을 온 적은 없다”고 웃었다.
중소출판업체에 다니는 김모(27)씨는 “연휴는 딴 나라 얘기”라고 하소연했다. 대기업 홍보물 제작 등 시한 내 처리해야 하는 일감 탓에 자리를 비울 수 없단다. 그는 “대기업처럼 인력이 풍부하고 사정이 좋은 곳이나 연휴를 주는 거지, 우리 같은 조그만 회사에게는 언감생심”이라고 했다.
5월 초 황금연휴에 직장인들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모처럼 긴 연휴에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로 국제공항이 북새통을 이루고, 국내 여러 관광지로 이어지는 도로가 꽉 막힐 정도인 반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직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속앓이만 하고 있다.
특히 간호사와 같은 전문직이나 백화점 직원 등 서비스직 종사자들에게 연휴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이모(30)씨는 “교대 근무가 필수인 직업 특성상, 평상시와 다를 게 없다”며 “붐비는 공항, 꽉 막힌 도로 사정을 전하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끼리 신세 한탄이나 하고 있다”고 했다. 연휴를 맞아 병원이나 백화점 등으로 손님들이 몰리면서, 쉬기는커녕 평소보다 더 바쁘다는 게 이들 얘기다. 간혹 용감(?)하게 ‘한 번 쉬어볼까’는 생각도 해보지만, ‘네가 쉬면 다른 사람들이 그만큼 더 일해야 한다’는 눈총에 자포자기하는 게 대부분이다.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 경비를 담당하는 박모(67)씨도 “연휴가 더 힘들다“고 한탄하는 이들 중 하나다. 그는 “연휴는 둘째치고, 여행 떠나고 집을 비우는 주민들 때문에 우리는 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일해야 한다“고 했다. 건물 청소노동자 박모(56)씨도 “내가 맡은 건물이 문을 닫지 않는 한 휴식도 없다”고 쓴웃음 지었다. 자영업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연휴 때일수록 가게 문을 일찍 열고 늦게 닫아야 한다”며 “실제로 매출이 늘던 안 늘던, 혹시 모를 손님들이 있을까 쉴 수 없다”는 분위기다.
‘연휴는 그저 일부의 호사’라는 건 수치로도 드러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중소제조업체 250곳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연휴는 중소기업 종사자 절반 정도(54.0%)만 누릴 수 있었다. 이들은 이번 징검다리 연휴기간 평일 2일, 4일, 8일 중에 적어도 하루 이상 쉬는 사람들로, 사흘을 모두 쉬면서 완전한 황금연휴를 즐기는 이들은 고작 10명 중 1명(8.2%)에 불과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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