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독자권익위]
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회가 19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 대회의실에서 4월 회의를 열어 지난 한달 지면을 평가하고 개선방안 등을 조언했다. 새로 구성된 3기 독자권익위 첫 회의이기도 한 이날 회의에는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교수인 이재경 위원장을 비롯 독자위원인 구현모(고려대 대학원 재학)씨, 류재성 계명대 교수, 오연조 상상스쿨 출판사 대표, 이윤정 재단법인 여시재 SD, 조원희 변호사와 간사 이계성 한국일보 논설실장이 참석했다. 김기주 한국리서치 이사는 해외출장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이재경 새로운 독자권익위원회를 시작하게 되어 반갑다. 4월 위기설 등 한반도 안보위기 관련 보도부터 말씀해달라.
구현모 4월 11일자 1면 ‘북 공습ㆍ외국인 소개설… 공포 키우는 루머’ 기사를 보면 “소스가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다”라고 지적돼 있다. 기사마저 ‘익명의 고위 관계자’라고 돼 있어, 카톡 지라시 등의 음모설과 국내 안보기사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정보 비대칭이 특히 큰 분야가 안보 분야다. 기자들의 노고와는 다르게 취재원이 익명이고 특파원들 기사도 대부분 ‘38노스’ 등을 인용해 신뢰성이 떨어진다. 공포를 키우는 기사가 잔잔하게 분석해주는 기사보다 많았다.
오연조 다른 매체에 비해 한국일보의 보도는 수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온라인상에 유포되는 위기설은 대부분 허위라는 정부 판단을 소개하고, 해외의 반향을 전해줘 독자들이 상황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됐다. 위기상황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말고, 사설이나 칼럼, 분석 기사로 진실을 알려주는 친절한 신문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원희 안보 관련 보도는 방향 잡기 어려운 주제 중 하나다. 한국일보는 이 부분들을 충분히 취재하고 제시했다. 톤도 특별히 치우치지 않아 상황을 파악하기에 괜찮았다. 그런데 대부분 외신에서 언급되는 내용을 받아 요약하는 정도라 아쉬웠다. 주체적인 관점의 기사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국 정부의 기사는 전체 45개 중에 1개였다.
이윤정 일부 신문의 위기감 증폭 의도가 한국일보에서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4월 위기설이 급박한 상황이라면 지금 누가 어떻게 대비하고, 어떤 액션을 취하는 지가 중요한데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미국 중국 언론 이야기만 들여다 보면 되나. 누가 이것에 대한 책임자인가 등 그런 궁금증이 하나도 해결이 안 된다.
이재경 한국일보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언론의 국제 취재 부분이 취약한 상태다. CNN은 평양에 기자가 한 명 가 있어 라이브 리포트를 한다. 워싱턴의 방송들도 안보 전문가 대여섯 명이 나와 이야기를 하는데 굉장히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처럼 들린다. 문제는 우리 국민들에게 정말로 미국 행정부의 의지가 무언지 제대로 알려주는 스토리가 없다는 것이다. 1980년대 한국일보는 국제 보도가 셌다. 지금은 역량이 떨어진 느낌이다. 한국일보의 강점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로 봤을 때 이 부분은 놓아버리면 안 되는 영역이다.
이계성 이번 4월에는 미국 NBC방송의 간판 앵커의 서울 생방송 리포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성, 시리아 및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무장조직 IS 근거지 공격 등으로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높았다. 북한에서는 태양절, 인민군 창건기념일이 맞물려 있어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가 컸다. 냉정하게 보면 시리아는 공격을 받고 곧 반격할 능력이 없지만 북한은 반격할 능력이 있다. 사실상 수도권은 북한에 인질로 잡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트럼프일지라도 쉽게 군사적 행동으로 가기 어렵다. 이런 부분과 외신 뉴스를 잘 조합해 신뢰성 있는 기사를 제공하도록 노력하겠다.
이재경 다음 주제인 대선후보 확정 과정 보도로 넘어가겠다.
구현모 3월 20일자 6면 ‘대선 3자구도냐 양자구도냐, 합종연횡 따라 요동’ 기사에서 몇 가지 표현이 거슬렸다. 국민의당, 바른정당을 중도연합이라고 표현했다. ‘중도’라는 단어를 빼고 ‘연합’이라 하는 게 낫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패권, 비문재인을 비패권이라 했는데, 패권은 주관적이고 정치적인 표현이다. 3월 22일자 9면에서 젊은 시절의 ‘포워드 효과’라며 50대의 진보적 색채가 뚜렷하다고 했다. 그런데 진보라서가 아니라 뽑을 사람이 없어 그런 성향이 나온다는 말을 많이 한다.
조원희 ‘장미대선 3대 관전포인트’ 기획 시리즈가 좋았다. 후보 확정 전 추측해서 분석했던 기사가 실제 결과와 대략 비슷했다.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한’ 경선과정에서 깊이 있는 기사가 별로 없어 아쉬웠다. 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사이에서 핵심 이슈에 대한 정책, 공약 분석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갔어야 했다. 온라인 기사 밑에 링크된 기사들이 충분하지 않다.
이재경 우리나라 매체는 아직도 선거나 후보들 간의 경쟁을 보도할 때 기본틀이 경마식 보도다. 선진국 매체들은 시민들의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실어준다. 한국일보를 젊은이들이 굉장히 좋아한다고 하더라. 매체 이미지는 잘 잡혀 있다. 지면에 20, 30대 목소리가 직접 나오게 하면 어떨지 싶다. BBC 방송에는 스피커들 다수가 일반시민이고, 지역이나 인종도 섞여 있다. 선진국에서 정치, 선거 보도의 메인 타깃은 후보가 아닌 일반인 유권자다. 지금 우리가 하려고 하는 선거는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하고 있는 패턴은 옛날 패러다임이다.
이윤정 중계식 보도,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중심 보도가 아쉽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지지율이 경선 이후 상승세로 나가다 꺾였다. 가장 중요한 계기가 ‘국공립 유치원 병설’ 발언이다. 그날 하루 종일 네이버, 다음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였다. 그런데 신문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검증을 한다거나 단순한 팩트 체크도 하지 않고 국민의당의 해명만 보도했다.
네티즌들은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하고 깊이 있는 의혹까지 주고 받아,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유권자 눈높이는 자꾸 올라가고 예리해진다. 그에 맞는 기사가 나와야 한다.
구현모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워싱턴포스트에 사람들이 왜 트럼프를 지지했는지에 대한 글들이 좍 올라왔다. 우리는 그런 기사가 없다. 20대 인터뷰는 뻔하다. 공시생, SKY(서울-고려-연세대)출신 대기업 취준생뿐이다. 정말 저 사람들이 청년을 대변할 수 있을까. 유권자의 진화속도보다 보도형태의 진화 속도가 훨씬 느리다.
류재성 여론조사 기사가 지난 1주일 동안 거의 매일 실렸는데 ‘반(反) 안철수’란 생각이 들었다. 4월 14일자 5면 ‘안철수 지지율 주춤… 유치원 공약ㆍ부인 취업특혜 논란 탓?’의 오보에 가깝다. 일간 지지율은 완전한 대표 샘플로 비교해야 하는데 부분 부분을 비교했다. 전체적으로는 지지율이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 모두 올랐는데 굳이 안 후보의 일간 지지율이 이틀 연속 하락했다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4월 15일자 4면 ‘안철수 추격 속… 문재인 수권능력 평가는 단연 우세’기사는 제목이 잘못됐다. 변화와 쇄신의 리더십은 안철수 후보가 높게 나왔다. 4월 18일자 6면 ‘기관마다 제각각 여론조사 불신 커진다’ 기사를 썼다. 기관마다 조사결과가 제 각각인 이유를 얼마든지 상세하게 제시할 수 있었는데 불충분했다.
구현모 사람들이 여론조사를 판단할 때 신문 분석이 큰 역할을 한다. 4월 10일자 1면 ‘40% 천장에 갇힌 문재인- 치고 올라간 안철수…’는 유권자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제목이다. 제목을 담담하게, 최대한 팩트만 뽑았으면 좋겠다.
조원희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여론조사가 적정하냐는 논란 속에 빅데이터가 나왔다. 빅데이터가 진짜 표심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여론조사가 문제가 있다면 대안을 적극 시도해보면 좋겠다.
이윤정 A신문 자체 여론조사의 응답률이 31%라고 해서 오염됐다고 보고 있다.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갑자기 확 뛴 B신문 여론조사 때부터 오염에 대한 논란이 증폭됐다. C뉴스, D방송 사례들이 계속 나오니 의심의 근거를 가지게 된다.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서 E신문 등의 절독 이야기까지 나온다. 예민해진 독자들을 정치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내야 한다. 극성 지지자, 네거티브 공방으로 간주한다면 언론 불신만 초래한다.
이재경 여론조사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지난 대선 결과가 마지막 날 뒤집혔다. 조심할 필요가 있다. 선거법의 여론조사 금지 기간 규정도 국민을 우습게 보는 거다. 시비를 걸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나라가 많지 않다. 기사 제목들이 인용부호(“ ”)안에 써 있다. 미국 신문은 그러지 않는다. 퀄리티 신문과 안 그런 신문을 구별 짓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판단에 대한 책임은 신문사가 지는 게 맞다. 우리는 모든 신문이 1면 중요한 기사 제목에도 인용부호를 쓴다. 한국일보가 다시 정책을 고려해보도록 제안한다.
류재성 대부분의 신문에서 팩트 체크를 한다. 한국일보에서는 팩트 파인더를 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로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고민을 더 해 봐야 할 것 같다. 기사와 관련이 없는 사진이 많다. 사진만으로 정보를 전달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면 이해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빈 공간을 사진으로 활용한 느낌이다.
이재경 뉴욕타임스는 매일 사진을 1면 한가운데 쓴다. 포토 저널리즘에 대한 존중이고 전통이다. 그날의 대표 이미지가 이 자리에 박혀서 이런 시비가 없다. 한국 언론도 한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윤정 오피니언면 편집에서 제목이 오른쪽에 있고 글은 왼쪽에서 시작한다. 시선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데 제목을 먼저 봐야 한다. 처음 봤을 때 너무 놀랐고 불편했다.
오연조 수요일엔 숨돌릴 ‘겨를’(평일 이너섹션)과 토요일엔 고품격 ‘끌림’(기획 및 연재물 위주 주말섹션)이 시선을 끌었다. ‘겨를’과 ‘끌림’은 한국일보 독자들에게 다양한 읽을거리와 재미를 주는 선물 같은 지면이다. 예전 한국일보는 읽을 만한 연재물이 많은 신문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요즘은 특히 문화면 기사가 많이 줄었다. 이 두 섹션이 좀더 알찬 내용으로 꾸며져 자리를 잡게 되면 좋을 것 같다. 목요일의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 ‘짜오 베트남’같은 기획은 젊은 친구들을 끌어들여 독자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거라 보여진다. ‘배철현의 비극읽기’ 등은 시대의 흐름을 좀더 깊이 있게 확장하는 기능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정리=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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