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자 의식 고조, 투표율 80%대 이를 듯
최저임금 등 과제, 정권리더십 첫 시험대
촛불혁명에 마침표 찍는 시민책임 다해야
# "누가 되든 천국에 오른 기분으로 축배를 즐길 날은 불과 하루 이틀에 그치고, 이후부터 줄곧 지옥으로 치닫는 듯한 고민에 휩싸일 것이다.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고... 그 결과 1년 뒤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의 참패는 예정된 수순이다."
대선 판세가 요동치고 후보 간 희비가 엇갈리는 요즘, 한 유력캠프 관계자가 밝힌 심경은 의외였다. 새 정부가 처한 정치 환경이나 외교ㆍ안보 지형이 험난하고 갈등과 적의로 뒤얽힌 경제ㆍ사회적 여건도 녹록하지 않지만 이런 자조적 얘기가 나올지는 몰랐다. 그래도 선거에서 이길 생각에 머물지 않고 집권 후 스트레스를 걱정하는 게 보기 좋았다.
내달 9일 선출될 19대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맞닥뜨리게 될 과제 중 하나는 최저임금이다. 사소한 것 같지만 6월 29일까지 결정해야 하는 이 이슈는 새 정부의 성격을 규정짓고 갈등 조정 및 통합 역량 등 국정리더십 전반을 가늠하는 결정적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결정기구는 최저임금위원회이지만 이 기구를 움직이는 키는 공익위원 추천권을 가진 청와대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그랬듯이 올해 최저임금(시간당 6,470원)도 지난해 노동자위원이 모두 퇴장한 가운데 사용자 측이 제시한 인상안을 표결 처리한 것이다.
대부분의 대선 후보는 2020년까지 혹은 임기 중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을 이행하려면 노동계의 요구대로 매년 15% 안팎의 대폭 인상이 필요하지만, 그러려면 중소기업 및 영세자영업의 아우성에 눈감아야 한다. 노동계는 1989년 제도 도입 이래 한 번도 이루지 못한 두 자릿수 인상을 올해 기필코 관철할 태세다. 문제는 새 정부가 어떤 쪽에 힘을 실어 주든, 후유증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 선거철만 되면 즐겨 인용되는 두 경구가 있다. 하나는 "인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로 돌아간다"는 J. 루소의 지적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A. 토크빌의 통찰이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저질스런 세력에 지배당한다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말도 있다. 맥락은 조금씩 다르지만 권력수요자, 즉 주권자의 권리와 책임을 강조하는 점은 한결 같다.
엊그제 나온 한국일보 대선 여론조사 결과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적극 투표층이 92.2%에 달했다. 징검다리 황금연휴 끝에 실시되는 대선 투표율 우려를, 촛불ㆍ탄핵정국을 거치면서 단련된 주권자 의식이 단칼에 날려 버렸다는 증거다. 보름 전 실시한 중앙선관위 조사에서 82.8%에 달했던 적극 투표층이 이후 조사에서 85%를 넘나들더니 급기야 90%를 넘은 것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18대 대선 당시 선관위 조사에서 78.2%로 나타났던 적극 투표층이 75.8%의 실제 투표율을 이끌어 낸 것을 감안하면 이번 대선 투표율은 80%를 넘을 가능성이 크다.
# 재작년 12월 치러진 스페인 총선에서 창당한 지 2년도 안 된 좌파정당 '포데모스(podemos)'가 일약 제3당으로 부상해 큰 뉴스가 됐다. 마드리드의 '인디그나도스(indignadosㆍ분노한 사람들)' 시위를 이끈 지식층 주도로 2014년 출범한 이 당은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이름처럼 부패 청산과 불평등 해소를 앞세운 좌파정책과 네트워크 중심의 저비용 조직으로 국민에 파고들었다. 그러나 정책과 조직보다 유권자들에게 더 큰 울림을 준 것은 '당신이 희망을 갖고 투표한 마지막은 언제인가'라는 슬로건이었다. 아프고 힘들다고 정치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고 주권자의 권리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라는 메시지다. 내달 7일 실시되는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가 확실시되는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에 대해 유럽 언론들은 "환멸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유권자들과 함께 프랑스를 '가보지 않은 길'로 이끈다"고 평가했다.
정확히 10일 후 새 리더십에 대한 기대와 시민의 책임을 생각하며 투표장으로 향할 우리에게도 물어보자. "희망으로 투표한 마지막은 언제인가.”
**이 글은 필자가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비슷한 제목으로 쓴 칼럼의 연작이다.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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