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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낄] “말 잘하면 빨갱이” 편견 돌파 가능할까

입력
2017.04.2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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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본질적으로 불만족스럽다. 다니엘 샤피로는 원만한 협상을 위한 구체적 처방전을 제시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협상은 본질적으로 불만족스럽다. 다니엘 샤피로는 원만한 협상을 위한 구체적 처방전을 제시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또 콜로세움 열렸다.”

보수ㆍ진보, 남한ㆍ북한, 남ㆍ여, 한국ㆍ일본, 이 숱한 내편, 네편들. 세상 모든 단순 이분법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검투사들이 입장합니다. 자판 싸움에 능한 현대의 검투사들은 ‘키보드 워리어’라 불립니다. 싸움을 붙이는 이나, 싸우는 이나, 그걸 구경하는 이나, 이 싸움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감정소모라는 걸 다 알지만, 기꺼이 끼어듭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족(tribe)화 현상’이라 부릅니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 상식적 인간들이 이분법적 상황에 놓이면 자기 선택을 자기가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극단화하고, 결국은 ‘우가우가’ 창 흔들고 돌 던지는 원시인으로 되돌아 간다는 겁니다. 부지불식간에 발동되는 이 본성은 대체 어찌할 수가 없는가 봅니다. 한 가상 실험에 참가해 부족화 현상을 맛본 어느 유대인 랍비는 실험 뒤 이렇게 탄식합니다. “우리 부모님과 저는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될 뻔 했습니다. 저는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가만 있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일언반구도 저항하지 못하고 정해진 규칙에 묶여 있었습니다.”

‘불가능한 협상은 없다’는 미국 하버드대 협상연구소 부소장으로 전세계 분쟁지역 협상에 개입하고 조언한 경력이 풍부한 심리학자 다니엘 샤피로가 쓴 ‘부족화 현상 탈출 로드맵’입니다. 갈등이 격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체성입니다. 내 정체성을 건드렸다 싶을 때 협상은 틀어집니다. 쉽게 말해 인간은 삐쳤을 때 가장 격렬하게 반대합니다. 아무리 논리적 설득을 들이대봐야 상대는 이미 돌부처입니다.

샤피로는 이 정체성을 파고듭니다. 정체성은 ‘믿음’ ‘의식’ ‘충성’ ‘가치’ ‘감정적으로 의미 있는 경험’ 다섯 가지로 구성 됩니다. 스스로 진보임을 자부하는 이들 가운데 보수와는 말이 안 통한다고 한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비밀은 이 5가지에 있습니다.

진보의 정체성은 ‘가치’가 지배합니다. ‘정의’ ‘도덕심’ 같은 걸 기준으로 믿음, 의식, 충성, 감정적으로 의미 있는 경험을 평가하고 재단합니다. 보수는 정의만큼이나 자신이 믿는 종교, 결혼ㆍ출산처럼 전통적으로 가치 있다 생각하는 사회적 의례, ‘애국’과 같은 국가에 대한 소속감, 한국전쟁과 가난의 기억 같은 것들을 소중히 여깁니다. 가치 하나로 이를 비판 혹은 비난하면 협상 자체가 무산됩니다. 이 반감의 한국 버전은 이겁니다. “말 잘하면 빨갱이.”

책은 거대한 심리 실험 극장입니다. 샤피로는 믿음, 의식, 충성 등 상대의 정체성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협상을 진전시킬 수 있는 단계별, 상황별 행동지침을 세세하게 일러줍니다.

다만 한가지. 이 책이 정말 유용하려면 협상을 이뤄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절대적 전제조건입니다. 샤피로도 “갈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한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내가, 오늘,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끊임없이 자문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가장 큰 역설은 합의를 위해서라면, 합의하겠다고 합의해야 한다는 겁니다. 콜로세움 문을 다시 열어봅시다. 자, 진정으로 합의할 준비는 되어 있습니까?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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