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 오르자
“국민의 대통령될 것” 당수 사임
당색 지워 지지층 확보 전략 강화
좌우진영 총출동 마크롱 지지에
“공화국 전선 구식 썩었다” 비판
극좌 멜랑숑 지지층 공략 나설 듯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5월 7일)를 앞두고 좌우 진영이 총출동해 반(反)극우 전선 구축에 나선 가운데, 궁지에 몰린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후보가 재빨리 반격에 나섰다. 극우 색채를 완화하기 위해 당대표 사퇴까지 감행하며 23일 1차 투표에서 우위를 점한 에마뉘엘 마크롱 앙마르슈!(전진) 후보를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르펜 후보는 1차 투표 다음날인 24일(현지시간) 프랑스2 방송에 출연해 국민전선 당수 사임 의사를 밝혔다. 르펜은 “오늘 밤부터 나는 더 이상 국민전선의 대표가 아니라 대통령 후보다”라며 “프랑스 대통령이라면 모든 프랑스인을 통합할 줄 아는, 국민의 대통령이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당파적 고려에서 벗어날 것“이라며 당 색채를 지우고 결선에 임하겠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르펜은 앞서 2011년 1월부터 6년 넘게 당 대표직을 맡아왔다.
대표 자리에서 내려옴으로써 르펜은 프랑스 사회 분열의 해소에 대한 결단을 보여주는 동시에 일부 정책에 관한 자율권도 얻을 것이란 전망이다. 무엇보다 이는 반극우 여론의 발길을 돌려, 1차 투표 직후 형성된 ‘공화국 전선’(극우 집권을 막는 좌우연대)에 맞서겠다는 선포이기도 하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사회당 브누아 아몽 전 장관,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 등 1차 탈락 후보들은 23, 24일 일제히 르펜의 경쟁자인 마크롱 후보에 지지를 표했다. 르펜은 이에 “공화국 전선은 구식이고 완전히 썩었다”며 반격 태세를 갖췄다.
르펜의 행보가 전혀 개연성 없는 것도 아니다. 르펜 후보는 대선 캠페인 동안에도 자신에게서 당 색깔을 지워 지지층을 확대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앞서 2월 리옹에서 가진 대선 출정식에서는 당 이름, 가족의 흔적을 일절 드러내지 않은 채 ‘국민의 이름으로’라는 대중적 구호만 강조해 주목받았다. 물론 유럽연합(EU) 재협상, 합법적 이민 감축 등 극우 공약은 그대로였지만, 청년층은 물론이고 장마리 르펜 시절의 국민전선에 반감이 큰 중년층에게도 일부 효과는 있었다.
르펜은 이날도 마크롱 후보에게 맹공을 퍼부으며 유세를 이어갔다. 그는 마크롱이 “히스테리적이고 급진적인 유럽주의자”라며 “프랑스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단 1온스(약 28g)의 애국주의도 보여주지 않는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마크롱을 ‘반(反) 프랑스 후보’로 부각하겠다는 명확한 전략이다. 르펜은 투표 당일 자신의 표밭인 북부 에낭보몽에서 선거행사를 가진 후 이날 인근 소도시 루브루아를 찾아 “프랑스인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와 같은 중요 사안에 더 관심을 기울여주길 바란다”며 “마크롱은 이 분야에서 매우 취약하다”고 강조했다.
르펜 측은 결선 투표까지 남은 열흘간 부동층과 극좌 장뤽 멜랑숑 후보 지지자들을 공략해 세를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멜랑숑은 주요 후보 중 유일하게 마크롱 지지를 선언하지 않은 인물이다. 일부 르펜 자문단은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등에 대한 입장이 유사한 멜랑숑의 지지층이 유입되길 기대한다고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밝혔다. 프랑스24 방송에 따르면 1차 투표에서 멜랑숑은 18~24세 유권자의 30%, 르펜은 35~49세 유권자 29%의 표를 얻어 각 연령대에서 최대 지지를 얻었으며, 25~34세 구간에서는 나란히 24%를 득표해 2위에 올랐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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