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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스무 살 짜리 친구들

입력
2017.04.2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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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대학에서 강의 하나를 맡아 하고 있다. 지난해 처음 강의요청을 받았을 때에는 워낙 벌린 일들이 많아 거절할까 싶었다. 그러나 모처럼 스무 살 안팎의 청년들을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흔쾌히 수락했다.

부탁 받은 강의 제목은 ‘사진예술론’. 형식상 수업계획서에는 ‘사진 발명 초기에서 21세기까지 세대별 사진가들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현대사회에 넘쳐흐르는 이미지의 예술적 본질을 이해’하도록 하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줄줄이 써 넣었다. 그러나 사진을 전공할 것도 아닌데 딱딱한 이론이나 촬영지식을 엄하게 전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진의 예술성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별 관심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등의 어려운 취업전쟁 속에서 청년들의 실제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듣거나 돕고 싶다는 괜한 오지랖이 더 앞섰다. 은근한 사심도 있었다. 언젠가부터 섣부른 ‘꼰대’ 향기나 주변에 흩뿌리고 있지는 않은지 나름 고민이 있던 차였기에 젊은 영혼들과 어느 정도 교감이나 소통이 가능할지 스스로 내 자신의 지금 모습을 살펴보고도 싶었다.

학기가 시작되는 강의 첫날은 아주 뻘쭘했다. “반갑습니다. 다른 교수님들에 비해 내가 나이가 좀 많아 보이지요? 그래도 이쁘게 봐주세요. 하하하”.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 떡 하니 교탁 앞에 서서 한다는 첫인사가 이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조용히 경청만 할 뿐 수업시간 내내 별다른 대꾸를 안 했다. 그날 내내 나름 친해지려는 선의의 마음으로 준비한 농담거리는 강의실 천장으로 허무하게 흩어지고 사라졌다. 멀뚱멀뚱한 눈동자들만 바라보다가 끝난 첫 강의를 두고 그날 저녁 아내에게 이러 저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매사에 상황파악이 빠른 아내는 ‘그런 아재개그는 본인에게나 통하지 20대 청춘들에게 무슨 기대를 하느냐’며 애정 어린 잔소리로 화답을 했다. 다음 시간부터는 굳이 웃겨보려고 하지 않았다.

몇 주 동안 학생들이 품고 있는 미래의 꿈을 진심으로 묻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답변을 들으면서 격려와 지지의 박수를 빠짐없이 쳐주었다. 더 많이 듣고 싶었지만 재촉하지는 않았다. 같은 또래였던 시절 품었던 나의 꿈과 고민들, 그리고 수없이 겪었던 나의 시행착오 이야기도 가감 없이 들려주었다.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소망한다는 내 인생관도 말해주었다. 뭔가를 가르친다기보다 가급적 함께 건네고 받는 나눔의 시간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말투와 행동 등의 몸가짐도 주의를 했다. 2년제 학교인 탓에 평소 학생들은 일주일 내내 빡빡한 수업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또한 대부분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늘 피곤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준비했던 강의의 무게감을 조금 더 가볍게 했다. 사진의 사회적이거나 예술적인 의미에 대한 내용은 줄이고 오히려 자기 주변의 일상 살펴보기 같은 생활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과제들을 주었다. 사진이 지닌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내용을 보완하고 조정했다. 재촉하거나 주입하지 않는 수업방식 탓일까. 학생들과의 연대감은 조금씩 그리고 편안하게 깊어져 갔다.

엊그제는 중간고사를 치렀다. 시험 감독을 위해 강의실에 들어서니 일찍부터 자리를 잡고 책과 노트에 머리를 파묻은 학생들이 부지런히 ‘열공’을 하고 있었다. 학점을 취득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구도로 몰고 갈 일없이 나름 쉽게 쓰고 답할 수 있는 내용으로 시험문제를 출제했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잘 치를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다. 문제지를 받은 학생들 대부분 자신 있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보기 좋은 순간이었다. 소박한 기대감을 품고 시작한 이 강의는 이제 매주 월요일 오전 열네 명의 아름답고 귀한 친구들과 만나는 인연의 고리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학기과정을 마치고 나면 이 친구들과 맥주 한잔 하면서 마저 못다 한 꿈 이야기들로 오랜만에 이들과 더불어 밤을 보낼 작정이다.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하얀 밤을 채울 아이들의 꿈 이야기들이.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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