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싼유류저장소ㆍ철로 지도에 없어
군인들 상주하면서 경비 ‘삼엄’
주민 “원유 열차 하루 한 번 꼴
아예 끊으면 北 주민 힘들어져”
“이곳은 군사시설이니 바로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조치를 취하겠다.”
24일 오전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외곽 러우팡(樂房)진에 위치한 바싼(八三)유류저장소 인근. 기자에게 신분 확인을 요구한 중국 군인의 표정은 내내 굳어 있었다. 굵은 빗방울이 내리고 있었지만 그는 기자가 탄 승용차가 싱광(星光)촌 주도로에 진입할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동행했던 지인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택시기사들이 고개를 가로젓던 이유를 짐작할 만했다.
바싼유류저장소는 중국이 북한에 공급하는 원유를 저장하는 곳이다. 언뜻 봐서는 여느 시골에나 있을법한 평범한 모습이지만 핵심 군사시설로 분류돼 내부에 군 부대가 주둔해 있다. 10개의 흰색 대형 원유탱크 주변에 설치된 감시탑에선 병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고 여기저기 폐쇄회로(CC)TV도 설치돼 있다. 단둥 시내에서 북쪽으로 30여분 정도 자동차를 달리면 나오지만 지도에는 표기돼 있지도 않다. 헤이룽장(黑龍江)성 다칭(大慶)유전에서 열차로 원유가 운송돼 오지만 철로 역시 지도에선 찾아볼 수 없다.
인근 싱광촌의 한 70대 주민은 “내가 한창 때는 원유를 실은 열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갔는데 요즘은 하루에 한 번 정도 오고 가끔은 안 오는 날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북 원유 제공량이 ‘0’이라는 중국 해관의 공식통계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사실과 함께 연간 200만톤 넘게 북한에 보내던 원유량이 최근에는 50만톤 수준으로 줄었다는 일반적인 추론을 뒷받침하는 얘기다.
20분 정도 남동쪽으로 차를 달려 마스(馬市)촌으로 갔다. 이곳에는 대북 송유관 가압시설이 설치돼 있다. 북한으로 원유를 보내는 마지막 공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뒤편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사진 촬영이 가능했다는데 이날은 인근 파출소 소속 공안 한 명이 우의를 입고 서 있었다. 마스촌의 한 주민은 “원래는 시간마다 순찰을 도는 정도였는데 한 달쯤 전부터는 아예 자리를 잡고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내친 김에 중국이 보내는 원유가 평안북도 피현군 백마리의 봉화화학공장으로 보내지는 송유관의 흔적까지 찾아가기로 했다. 대북 송유관은 북한과 중국을 가르는 압록강에 설치된 태평만댐 하부를 통과한다. 마스촌 가압시설에선 북동쪽으로 30여㎞를 더 가야 했다. 하지만 중간 정도 가다가 빗줄기가 거세져 후산(虎山)산성 인근에서 차를 멈췄다. 다행히 도로변 철책 아래로 송유관을 덮어 싼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었다.
중국은 최근 북한의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대한 우려, 이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조치 가능성 언급 등으로 한반도에 위기가 고조되자 대북 원유 공급 축소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경고다. 바싼유류저장소 등의 경계가 강화된 이유가 설명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후산산성 인근 도로변 식당 주인은 “원유를 아예 끊으면 북한 인민들이 더 힘들어진다”고 했다. ‘인도주의적 재앙’을 경계하겠다는 중국 지도부의 의중이 어느 정도는 민심의 반영이라는 해석도 가능해 보였다.
단둥=글ㆍ사진 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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