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금 해제 이후 첫 해외출장
최대 현안 직접 챙기며 승부수
日 여론, 해외 매각에 부정적
경영권 확보 대신 협업 가능성도
최태원(사진) SK그룹 회장이 도시바 반도체 부문 인수를 위해 24일 일본으로 출국했다. 4개월 여간 이어지던 출국 금지가 해제된 이후 첫 해외 출장을 떠난 최 회장이 그룹 최대 현안인 도시바 반도체 사업 인수전을 직접 챙기며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재계에 따르면 이날 최 회장은 서울 김포공항에서 전용기 편으로 일본 도쿄로 떠났다. 출국에 앞서 최 회장은 “인수전에 자신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가서 현장을 보겠다. 다녀와서 이야기하겠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최 회장은 2박 3일의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도시바 경영진, 일본 금융계 인사들과 잇따라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출장에는 그룹 내 인수합병(M&A) 전문가인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동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의 행보는 일본 언론도 주목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 회장이 지난달 1차 입찰 실시 이후 도시바를 처음 방문한다”면서 “도시바 반도체의 주력 거점인 미에현 욧카이치 공장에 투자와 고용을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내 여론이 도시바 반도체 사업을 중국 등 해외 기업에 넘기는 것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최 회장은 지분 인수로 경영권을 확보하는 대신 전략적 협업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단순히 기업을 돈 주고 산다는 개념을 넘어 조금 더 나은 개념을 생각해 접근하겠다”며 “도시바와 협업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 회장이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 파트너인 웨스턴디지털(WD)과 접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도시바의 욧카이치 공장 장비 구입에만 1조4,000억엔(약 14조4,0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WD는 도시바 반도체 부문의 제3자 매각에 반대하며 독점교섭권을 요구한 상태다. 때문에 최 회장은 일본을 방문중인 WD의 마크 롱 최고재무책임자(CFO) 등과 만나 제휴를 제안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재무적투자자(FI)들도 최 회장이 접촉할 대상이다. SK하이닉스는 미국의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털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전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본의 재무적투자자들까지 끌어들이면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을 우려하고 있는 일본 내 여론 악화를 막을 수도 있다.
현재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는 SK하이닉스 외에 대만 훙하이정밀공업(폭스콘), 미국 사모펀드 실버레이크와 반도체회사 브로드컴 연합 등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훙하이는 예비입찰에서 무려 3조엔(약 31조5,000억원)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최 회장은 “지금 진행되는 입찰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금액에 큰 의미가 없다”며 “본입찰 땐 달라질 것”이라며 강한 인수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도시바 반도체 부문의 경영권 인수에는 대규모의 자금이 필요하고, 일본 내 여론의 벽을 넘어서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최태원 회장이 일부 지분을 인수해 전략적 협업을 진행하는 방안이 보다 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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