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아이스하키가 ‘키예프의 기적’을 쓰고 있다.
백지선(50)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4일(한국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A(2부리그) 2차전에서 강호 카자흐스탄에 5-2 역전승을 거뒀다. 이로써 2연승(승점 6)으로 대회 중간 순위 선두로 나섰다.
한국(23위)과 카자흐스탄(16위), 오스트리아(17위), 헝가리(19위), 폴란드(20위), 우크라이나(22위)까지 6개 팀이 출전해 라운드로빈으로 최종 순위를 가리는 이번 대회에서 상위 2개국은 2018년 5월 덴마크에서 열리는 2018 IIHF 아이스하키 월드챔피언십(톱 디비전)으로 승격하고 최하위 팀은 디비전 1 그룹 B로 강등된다.
2경기 만에 승점 6점을 확보, 디비전 잔류를 확정한 한국은 이제 남은 3경기에서 ‘꿈의 무대’로 여긴 IIHF 월드챔피언십 승격에 도전한다.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강타하고 있는 한국 아이스하키의 돌풍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적 같은 결과다.
한국은 이번 대회 최강으로 꼽히는 카자흐스탄과의 2차전에서 승점을 따내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한국 아이스하키는 1995년 아시안컵에서의 첫 대결에서 1-5로 진 것을 시작으로 지난 2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2017 동계 아시안게임에서의 0-4 패배까지 카자흐스탄과 12번 맞붙어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게다가 카자흐스탄은 이번 대회 우승을 목표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출신의 귀화 선수 5명을 포함한 베스트 전력으로 임해 승산은 더욱 희박해 보였다. 그러나 한국은 일반적인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카자흐스탄에 5-2의 드라마틱한 역전극을 연출했다.
한국은 경기 초반부터 장점인 스피드를 바탕으로 전방위에서 카자흐스탄을 압박하며 이변 연출을 예고했다. 체격조건과 개인기에서 앞선 카자흐스탄을 상대로 시종 왕성한 활동량을 보이며 공수지역을 가리지 않고 집요하게 달라붙어 상대를 괴롭혔다.
카자흐스탄은 1피리어드 8분1초 만에 NHL 출신의 귀화 선수인 나이젤 도즈(어시스트)와 브랜든 보첸스키(득점)의 콤비 플레이로 선제골을 만들어냈지만 한국은 15분56초에 안진휘(26)의 동점골로 응수했다. 공격지역 오른쪽 서클에서 이뤄진 페이스오프에서 김기성(32ㆍ이상 안양 한라)이 따낸 퍽이 카자흐스탄 수비수 막심 세묘노프의 스틱에 맞고 흐른 것을 안진휘가 그대로 리스트샷으로 마무리, 카자흐스탄 골 네트를 흔들었다.
카자흐스탄은 2피리어드 들어 NHL 출신 귀화 선수들의 개인기를 앞세워 공세의 수위를 높였고 13분25초에 마틴 세인트 피에르-브랜든 보첸스키로 이어진 패스를 나이젤 도즈가 마무리, 다시 리드를 잡았다. 한국은 2피리어드까지 유효 슈팅(SOG)에서 11-18로 열세를 보였지만 수문장 맷 달튼(31ㆍ안양 한라)의 선방으로 추가 실점하지 않으며 한 점 차 승부를 이어갔다.
그러나 한국은 3피리어드에 4골을 터트리는 무서운 집중력과 뒷심으로 기적 같은 뒤집기 쇼를 만들어냈다.
알렉스 플란트(28ㆍ안양 한라)가 대역전극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플란트는 3피리어드 5분 29초에 마이클 스위프트(30ㆍ하이원)-조민호(30ㆍ안양 한라)로 이어진 패스를 하이 슬럿에서 강력한 리스트샷으로 마무리,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플란트의 동점골이 터진 후 카자흐스탄은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했고 한국은 기세를 이어갔다.
역전 결승골은 신상훈(24ㆍ안양 한라)의 스틱에서 나왔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빠르게 전환하던 3피리어드 7분2초에 공격 지역 왼쪽 측면에서 조민호의 크로스 패스를 연결 받은 신상훈은 상대 골리 왼쪽 어깨를 넘어 골문 탑 코너를 찌르는 송곳 같은 리스트샷으로 역전골을 터트리고 포효했다. 곧바로 맞은 숏핸디드(페널티로 인한 수적 열세) 상황을 실점하지 않으며 위기를 넘긴 한국은 3피리어드 9분58초에 이날 경기의 히어로인 플란트의 강력한 슬랩샷이 골 네트에 꽂히며 흐름을 완전히 끌어오는데 성공했다.
뒤집기를 허용한 카자흐스탄은 신경질적인 플레이를 펼치기 시작했고 3피리어드 11분21초에 마틴 세인트 피에르가 슬래싱 반칙으로 마이너 페널티(2분간 퇴장)을 받은 데 이어 11분26초에 알렉산더 리핀이 신상훈에게 악의적인 보딩 반칙을 범해 게임미스컨덕트(경기 완전 퇴장)을 당하는 등 크게 흔들렸다.
세인트 피에르와 리핀의 퇴장으로 5대3 파워 플레이를 맞이한 한국은 3피리어드 11분41초에 알렉스 플란트의 패스를 받은 김기성이 상대 골리를 따돌리는 절묘한 스틱 핸들링에 이은 백핸드샷으로 골을 터트리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폴란드전에 이어 눈부신 선방을 펼친 수문장 맷 달튼은 이날도 32개의 유효 슈팅 가운데 30개를 막아내며 대역전극의 토대를 만들었고,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한 알렉스 플란트는 경기 MVP에 선정됐다.
카자흐스탄을 상대로 22년 무승 사슬을 끊어내며 자신감을 놓인 ‘백지선호’는 25일 밤 11시 헝가리를 상대로 3차전을 치른다. 헝가리는 우크라이나와 1차전에서 접전 끝에 5-3으로 승리했다. 한국은 역대 전적에서 헝가리에 2승1무11패로 열세에 있고 IIHF 세계선수권에서는 10번 만나 1승1무9패를 기록 중이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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