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달팽이→ 채소→ 인체감염
기생충이 뇌수막염 등 일으켜
치료약 없고 합병증 사망까지
“온난화 탓” 해안서 내륙으로 퍼져
미국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앨라배마주 등 무더운 주를 중심으로 ‘쥐 허파벌레’병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기후온난화로 고온ㆍ다습한 날이 이어지면서 쥐의 폐동맥에 기생하는 ‘광동주혈선충’ 감염환자가 올 들어 예년보다 3배 이상 급증하고 있다.
23일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하와이주 마우이에서만 감염자가 6건, 빅 아일랜드에서는 3건이 공식 확인됐다. 미 언론은 “과거 수십 년간 마우이 봄철 감염자는 평균 2명 미만이었다”며 “절대 수치는 적어도 폭발적 증가세”라고 우려했다. CNN은 기생충이 음식으로 전염되기 때문에 하와이 식당가를 찾는 관광객들마저 급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포감은 환자가 방송에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증폭되고 있다. 감염자인 트리시아 마이나는 하와이 현지 TV에 출연, “매일 출산 때보다 더 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누군가 내 어깨뼈를 얼음 깨는 송곳으로 쑤시거나, 머리 안을 뜨거운 다리미로 지지는 거 같다”고 말했다.
쥐에서만 사는 이 기생충이 사람을 괴롭히는 경로는 이렇다. 죽은 쥐나 쥐 배설물을 통해 외부로 나온 기생충에 오염된 운반숙주(달팽이)를 만지거나, 달팽이 분비물이 묻은 채소나 물을 섭취하면 인체로 유입된다. 인체에 들어온 기생충은 뇌 혹은 척수로 이동해 발열ㆍ구토ㆍ사지마비 등을 동반한 뇌수막염을 일으키거나 시력저하 혹은 시각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합병증으로 정신박약, 시신경 위축, 사지 불완전마비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문제는 치료약이 없다는 것이다. 진통제 등으로 고통을 줄여주는 정도가 최선이다. 인체 내에서는 번식이 불가능해 기생충이 자연 소멸되거나 외부로 유출되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피터 호테즈 베일러 약학대학장은 “온난화로 아열대 지역에서만 발생했던 이 기생충이 미국 본토 전역에서 출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15년 연구에 따르면 하와이와 미 남ㆍ서부해안에 머물렀던 이 기생충의 발생 지역은 계속해서 미 본토 북서쪽으로 확장되고 있다. 실제로 내륙지역이어서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오클라호마주에서도 이 기생충의 인체침투가 확인됐다.
미 방역당국은 ‘쥐 허파벌레’병의 확산을 저지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또 시민들에게 달팽이를 만지지 말고, 제대로 씻지 않은 채소를 먹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운동가인 레트 존슨은 “중국ㆍ동남아 화물선에 실려 기생충에 오염된 달팽이ㆍ패류가 계속 유입되고, 기후온난화로 미국 전역이 기생충 확산에 유리한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며 “인간이 초래한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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