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英 기업·단체와 거래 끊자”
산하 기관 고용·연구계약 수주 등
“영국이 제3국될 상황 고려” 지시
사실상 신규거래·인사 차단 조치
영국이 브렉시트(유럽연합(EU) 탈퇴)를 앞두고 조기 총선을 결의한 가운데 EU 역시 발빠르게 영국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수십억유로를 주무르는 EU 산하 주요기구들이 가능한 한 영국 기업ㆍ단체와의 거래를 배제하고 이들 기업이 잔여 27개국(EU27)으로 옮기거나 분사를 설립하도록 권장하고 나섰다. 사실상 ‘탈퇴자 징벌’인 셈이다. EU의 외교수장도 “영국은 우리(EU27)보다 더 많이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가 19일 공개한 EU 내부문건에 따르면 한 EU 집행위원회 고위 관계자가 “브렉시트 협상이 완료되는 2019년 이전까지 영국과의 불필요한 추가적 논란을 방지하는 조치를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문건에 따르면 EU 집행위와 관계기구들은 앞으로 영국이 법적인 문제뿐 아니라 정치적ㆍ실용적인 차원에서도 ‘제3국’으로 취급될 상황을 고려해 영국인의 고용이나 영국 기업ㆍ조직의 연구계약수주를 준비해야 한다. EU 관계자들은 그간 EU가 영국에 제공해 온 서비스가 EU에서 영국 정부로 이관됨에 따라 관련 예산도 그대로 집행될 것이라 강조해 왔지만, ‘브렉시트 대비’를 구실로 신규 거래에는 사실상 차단조치를 내린 셈이나 마찬가지다.
그 외 지시사항으로는 ▦영국 내 사기업에 유럽 대륙과의 관계에서 ‘법적 영향’이 있을 가능성을 고지하고 EU 내에 사무소를 설치할 것을 권장하라 ▦EU 산하 주요기구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영국의 접속권을 브렉시트 당일 단절할 준비를 하라 등이 있다.
EU는 영국에 본부를 둔 유럽기구를 대륙으로 옮기는 작업도 서두르고 있다. 데이비드 데이비스 영국 브렉시트장관은 런던 커내리워프에 본부를 둔 유럽의약청(EMA)과 유럽은행감독청(EBA)이 떠나는 것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미 EU 내에서는 두 기구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한창이다. 유럽의 새 금융허브를 노리는 파리와 프랑크푸르트가 EBA를 유치하려 나섰고 코펜하겐ㆍ암스테르담ㆍ스톡홀름ㆍ더블린ㆍ바르셀로나ㆍ밀라노 등이 EMA를 노리고 있다.
이처럼 EU가 브렉시트 협상을 앞두고 영국을 압박할 수를 쌓아가는 가운데 EU 고위 관계자는 공개적으로 영국을 향해 경고를 날렸다. 중국 베이징을 방문 중인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20일 칭화(淸華)대 강연에서 “협상은 험난할 것이고 우리는 중대한 회원국 하나를 잃는다”면서도 “영국 친구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잃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EU는 ‘27개국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작업도 서두르고 있다. 4월 29일 브렉시트 협상 대비 정상회담을 거쳐 5월 22일께는 최종 협상 지시 사항을 합의해 미셸 바르니에 EU 브렉시트 협상대표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영국이 6월 8일 총선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협상을 개시하기 전에 태세를 완비하겠다는 것이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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