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생을 마감한 20대 케이블TV 조연출 PD의 죽음이 뒤늦게 논란이 되고 있다. ‘혼술남녀’라는 이 채널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의 PD는 유서에 자신의 처지까지 담아 방송 제작 현장을 이렇게 전했다.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 가긴 어려웠어요.” 청년유니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시민사회단체가 꾸린 대책위 조사에 따르면 ‘혼술남녀’ 제작 기간 중 약 두 달 동안 그의 휴일은 이틀에 불과했다.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PD의 안타까운 죽음은 어렵사리 취업한 이 시대 젊은이들이 얼마나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는지를 웅변한다. 결과물로 화려하게만 비치는 방송계의 제작 현실이 얼마나 구조적으로 열악한지도 돌이켜 보게 만든다.
방송계의 과로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방송작가의 예가 대표적이다. 대부분이 여성인 방송작가는, 지난해 관련 노동인권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주당 평균 54시간 노동에 월평균 급여 170만원, 막내 작가의 경우는 시급 3,880원에 불과하다. 인격을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작가가 80%를 넘었고, 절반 가까이가 성폭력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4대 보험 직장 가입률은 2%에 불과했다. 근로표준계약서도 거의 작성하지 않은 채 일하고 있었다.
특히 외주제작사의 경우 상시적으로 주요 방송사의 갑질 대상이다. 2년 전 한 케이블TV 소속 PD가 외주제작 PD를 폭행한 사건이 상징적이다. 방송 제작 현장에서 궂은일을 도맡다시피 하는 비정규직 스태프의 사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집에 거의 들어갈 수 없고 씻지도 못한다.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를 날들이 이어진다”는 게 아직까지도 엄연한 현실이다.
방송은 창의적이다. 게다가 화려하다. 현실이 얼마나 열악한지 뻔히 알면서도 그런 고통을 감내하며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줄을 잇는다. 거기서 자신의 꿈을 펼쳐보려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빌미로 꿈 많은 젊은이들에게 ‘열정 페이’를 강요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 꿈을 질식시킬 정도의 노동 강도를 요구해서도 안 된다. 정치도, 행정도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 방송계의 만성적 불합리성과 비인권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 케이블TV 조연출의 죽음이 해묵은 문제 해결의 새로운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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