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밤 10시, 두 번째 대선후보 토론회가 열린다. 공식 선거전이 시작된 17일 이후로는 처음이다. 선거관리위원회와 SBS가 공동주최했던 지난번 토론 때와는 달리 이번 토론은 ‘스탠딩 토론’ 방식으로 진행된다. 스탠딩 토론이란 모든 후보자가 토론이 진행되는 내내 원고 없이 서서 자유주제로 상호 토론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점잖게 앉아 준비해 온 원고만을 줄줄 읽었던 기존의 국내 대선토론과는 180도 다른 방식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스탠딩 토론이고, 왜 갑자기 이 방식을 도입하게 된 걸까?
왜 갑자기 스탠딩 토론?
그간 유권자나 일부 후보자들 사이에서 스탠딩 토론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매번 대선이 다가올 때마다 토론을 통해 정책을 검증하고, 후보자를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고, 그를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스탠딩 토론이 제시돼왔다. 하지만 실현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준비된 대본 외의 즉흥적인 질의응답에 약한 후보들이 이를 꺼렸고, 방송사들도 감히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2012년 대선후보 토론을 통한 정책ㆍ후보 검증에 실패한 결과가 너무도 처참했고, 이젠 그래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상대 후보들의 질문을 회피하며 동문서답하거나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모두를 경악하게 했음에도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벌인 대선후보 스탠딩 토론도 국내에 영향을 미쳤다. 두 후보는 서로의 정책을 집요하게 지적하고 비판했으며, 서로가 떠안고 있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클린턴은 트럼프의 세금회피와 음담패설, 성추문 사건 등에 대해 맹공격을 퍼부었고, 트럼프는 클린턴의 건강이상설과 이메일 스캔들을 물고 늘어졌다. 자칫 진흙탕 싸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두 후보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정책과 공약을 다시 한 번 풀어 설명하고, 의혹은 적극 해명하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 상대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 이유 등을 적극 어필했다.
이에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지난 7일 전체회의에서 이번 대선후보 TV 토론회에 시간총량제 자유토론 및 스탠딩 토론 방식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관련기사).
각본 없는 드라마, 스탠딩 토론
스탠딩 토론을 한 마디로 하면 ‘각본 없는 드라마’다. 때문에 스탠딩 토론에서는 짜여진 틀에서만 움직이고, 항상 정제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섰던 후보자들의 ‘진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최소 100분 이상을 선 채로 토론에 임해야 하는 데다가 정해진 질의응답 없이 상대의 막무가내 공격에 맞서야 하기 때문에 후보자들이 돌발행동을 하기도 하고, 특유의 습관적 행동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그만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실제 트럼프는 1차 스탠딩 토론에서 세금회피를 지적하는 클린턴에 순간적으로 “그래서 내가 똑똑한 거지”라며 세금을 회피한 자신을 도리어 치켜세우는 우를 범했다. 또 클린턴이 말하는 도중에 계속 “틀렸다(wrong)”라며 끼어들고, 비웃는 듯한 태도를 보여 유권자들에게 비난을 샀다. 클린턴도 2차 스탠딩 토론에선 시작한 지 40분만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며 부산스러운 모습을 보여 유권자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트럼프의 이상한 행동에도 시종일관 미소와 함께 차분한 모습을 보였던 1차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스탠딩 토론을 통해 다양한 방면에서의 후보역량도 파악할 수 있다. 질문이나 답변에 시간제약이 적기 때문에, 준비가 잘 된 후보는 자신의 정책이나 자신에 대한 의혹을 유권자들에게 적극 홍보ㆍ해명하며 상승세의 기회로 만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준비가 부족한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도리어 실망감을 안겨주며 지지율 하락의 늪에 빠질 수 있다. 또 순발력을 발휘해 역공에 성공하면 반전의 기회를 만들 수도 있지만, 아예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 토론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
19일 밤 토론의 관전 포인트도 바로 이 부분이다. 후보들이 자신의 정책과 공약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으며, 관련 지적에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또 자신이 받고 있는 의혹에는 어떻게 해명하는지, 토론에 응하는 태도는 어떤지 등을 눈 여겨 봐야 한다. 자칫 ‘드라마’로만 받아들였다간 2012년을 답습할 위험도 있다. 대선 토론회에서 유권자가 단순히 시청자 역할만 해선 안 될 이유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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