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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하늘감옥’에 오른 사람들

입력
2017.04.1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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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사거리의 한 광고탑에서 노동자ㆍ민중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 관계자들이 고공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사거리의 한 광고탑에서 노동자ㆍ민중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 관계자들이 고공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광화문 건물 옥상 위의 고공 단식농성

비정규직ㆍ노조탄압ㆍ정리해고 하소연

대선 후보들 비정규직 문제 해결해야

서울 광화문 사거리의 11층 건물 옥상 광고탑에는 지금 여섯 사람이 올라가 있다. 아래 인도에 2m 두께의 에어매트가 깔려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긴박한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다. 덥다가 바람 불고 비까지 내리는 궂은 날씨인데 이들이 기댈 곳은 광고탑 뒤 좁은 철판뿐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물과 소금만 섭취하며 단식을 하는 것은 사정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일행에 포함된 이인근씨와 그가 다녔던 통기타 제조업체 콜텍의 이야기는 3월 14일자 한국일보에 나와 있다. 콜텍과 모회사인 콜트악기는 한때 전세계 기타의 30%를 생산할 정도로 잘 나가던 기업이었다. 해마다 50억원에서 100억원의 순이익을 내던 콜트악기가 8억5,000만원의 손실이 나자 돌연 회사문을 닫고 직원들을 정리해고한 것이 2007년이다. 위장폐업 논란 속에 일자리를 잃은 이씨는 무려 10년이나 복직을 위해 싸웠지만 아직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옥상에 오른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다. 사내 하청업체 직원들이 노조를 설립하자 원청업체가 도급계약을 해지해 그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복수노조가 만들어지자 사용자 측이 원 노조 조합원들에게 임금삭감 등의 불이익을 주며 탈퇴를 압박하는 등 권위주의 시대에나 보았을 사연들을 안고 있다. 차헌호 아사히사내하청지회장이 “노조를 만들었다고 해고되고, 비정규직 주제에 원청에 목소리를 높였다가 해고되고,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무차별 해고됐다”고 매일노동뉴스에 말한 그대로다.

노동계에서는 고공농성을 “하늘감옥에 갇혔다”고 표현한다. 정치권과 사회의 중재 능력이 떨어지는 한국은 고공농성이 유난히 잦고 기간도 길다. 408일, 363일, 309일 등 최장기 기록은 대부분 한국에서 세워졌다.

고공농성을 들여다보면 결국 노조탄압,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에 이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제부턴가 거대 노조를 비판하려 할 뿐 노동 현장의 어려운 현실에는 눈을 감고 있다. 제 아무리 노조라도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면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귀족노조 프레임으로 노동 문제를 덮으려 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만 흐릴 뿐이다.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사정이 너무 열악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8월 현재 비정규직의 월 평균임금은 149만4,000원으로 정규직(279만5,000원)의 절반 수준이다. 격차가 더 큰 통계도 있다. 2016년 8월 현재 비정규직의 평균근속기간은 29개월로 정규직(89개월)의 30%에 불과하다. 29개월 즉 2년 반도 되지 않아 일하던 직장에서 나와 새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는 말로 다할 수 없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노동 문제는 중요 대선 이슈인 일자리 확대, 재벌개혁, 4차 산업혁명과도 맞물려 있다. 한쪽에서는 일자리를 못 구해 난리인데 지방 공단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어서 아우성인 사실을 떠올리면 그 연관성을 알 수 있다. 공단의 기업이 구인난을 겪는 것은 그들이 제공하는 일자리의 상당수가 임금이 적고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비정규직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들 기업의 상당수가 정규직을 채용할 여력이 없는 데서 비롯했다. 노동계는 대기업이 납품 단가를 후려치는 등 하청 중소기업에 제 몫을 주지 않는 것이 그 중요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대기업이 원자재와 서비스를 공급한 하청업체 등에 주는 몫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뜻이다.

대선 후보들도 비정규직 등 노동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는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 파면을 계기로 조기 대선에 나선 후보들이라면 분명 그와 달라야 한다. 그 다른 모습을 비정규직 문제와 거기서 파생된 일터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서만큼은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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